[조남대의 은퇴일기㉚] 그림과 수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에서’를 관람했다. 유명화가인 데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전시회를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그림뿐 아니라 작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수필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의 이름도 생소한데다, ‘사진동호회원들이 그림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가 생겨 망설이기도 했다. 여유 있게 도착하여 입장을 기다렸다. 시간이 임박할수록 꼬불꼬불한 대기 줄이 전시장 앞마당을 꽉 채운다. 평일 오전 10시인데도 이렇게 많다니?. 대부분이 20∼40대의 여성이고 우리 회원들의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인다.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유명한 화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카메라를 소지하고 갔지만, 대부분이 촬영 금지라 2시간 동안 메고만 다녔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규칙을 어겨가며 사진 촬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없는 사이에 슬쩍 촬영하는 예도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관람객의 문화 수준이 향상된 모양이다. 열두 시가 지나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도 입장하는 줄이 기다랗다. 코로나 19로 인해 억눌려 있다가 마스크 없는 나들이가 허용된 데다 유명화가 전시회라 발길이 끊이질 않나 보다. 한편으로는 도심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되자 시내에서 전시회를 보면서 봄바람을 쐬려는 의도에서 들른 것도 또 다른 이유가 아닌가 한다.
‘길 위에서’라는 제목처럼 작가 본인과 부인이 일상생활에서 접하거나 여행하면서 본 것 위주의 그림이다. 뉴욕이나 파리 등 대도시의 거리와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 영화 관람과 담배 피우거나 춤추는 사람 모습, 해안 절벽이나 바닷가 모래사장, 어촌과 부서지는 파도 같이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인 ‘맨해튼 다리’, ‘이 층에 내리는 햇빛’과 같은 유화를 비롯하여 삽화, 판화, 연필로 소묘한 작품 등 270여 점이나 되는 방대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국내에서 처음 개최한 개인전이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관심 있는 그림이 아니라서 사람들 뒤편에서 여유롭게 둘러보고 있었지만, 일부 관람객은 이어폰을 끼고 설명을 듣거나 아주 가까이서 유심히 들여다본다.
중간쯤 지나자 큰 영상 화면에 그림을 확대해 비춰주면서 작가의 의도와 깊고 심오한 감정표현까지 설명해 준다. 그림 속 인물이 바라보는 눈의 위치와 옆 사람과의 밀착도, 인물의 명암과 그림자, 신발과 옷과 엉덩이 치마의 팽팽함을 통한 관능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지금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실들과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이후에는 좀 더 가까이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기도 하고 고개를 쭉 내민다든지 관심 있게 보게 된다. 그림 내용을 조금씩 알게 되자 흥미가 느껴진다. 세밀한 근육의 묘사나 그림 속 공간을 비추는 태양 움직임과 밝기의 변화까지도 주의를 기울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출사 때 같은 위치에서 촬영하여도 생각과 시각에 따라 그 결과물은 전혀 다르다. 그림 전시회도 화가의 생애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 취지 등에 대해 미리 공부하거나 설명을 듣고 관람해야 한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둘러 본다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어 관심도 떨어진다.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에드워드 호퍼’ 자신의 이야기처럼 그동안 수필을 쓰면서 본질적인 내면은 제쳐놓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 위주로 쓴 것이 아닌가 한다. 독자들이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흡인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림과 수필은 서로 다른 형태의 예술이지만 유사점도 많다. 두 장르 모두 현상뿐 아니라 작가의 감성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또한, 창조적인 작업이면서, 주의 깊은 관찰력이 필요하다. 그림에서는 색과 형태 등의 시각적인 요소로, 수필은 문자를 통해 내면의 아이디어와 감정과 경험을 표현한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널려 있는 다양한 소재가 수필의 글감이 될 수 있다.
연필로 소묘한 것이나 습작품이 전시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수많은 연습과 덧칠을 거쳐 명화가 탄생하는 것과 같이 글도 초고 후 여러 번의 수정과정을 거친 다음 독자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전시회를 통해 유명한 화가의 습작 과정까지 보여줌으로써 관람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송나라의 소동파는 다듬어 고친 종이가 한 광주리가 되었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을 200번이나 고쳤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시회를 통해 문화에 관한 국민적 관심과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림과 수필은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지만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거나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며, 우리의 감정과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이나 수필은 외부로 보이는 것보다는 섬세한 관찰과 상상력을 통해 내면의 것을 끄집어내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좀 더 가까이하고 좋은 전시 작품을 감상하면서 부족한 감성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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