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4'의 대한민국, 남자가 직접 임신한다면?
[이진민 기자]
▲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포스터 |
ⓒ 한국영화아카데미 |
여자들이 애를 안 낳아서 한국이 사라지게 생겼다고? 0.78명이란 저조한 합계 출산율에 인구 소멸과 더 나아가 '한국 소멸'이 거론되고 있는 2023년, 매년 뜨는 '출산율 꼴찌' 뉴스와 변변찮은 출산 장려 정책은 식상하다. 이젠 무슨 수를 써도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임기 여성에게 매달릴 게 아니라 새로운 묘수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어디 여자 말고 애 낳을 사람 없을까?
단편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속 2030년 대한민국은 가임 인구 숫자를 늘리기 위해 '남성 임신 기술'을 도입한다. 남자가 가문의 대를 '낳아서' 잇는 역발상 이야기에 관객 반응이 뜨겁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 제16회 폴란드 애니메이션 영화제 'Animator'에 초청되었다. 과연 아버지를 꿈꾸던 영화 속 남성들은 흔쾌히 임신을 선택할 것인가.
▲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스틸컷 |
ⓒ 한국영화아카데미 |
10년 차 난임부부, 아내 강유진의 시험관 아기는 또 실패다. 이러다 가문의 대가 끊어지겠다는 시아버지의 전화에 남편 최정환이 '걱정하지 말라'고 답할 때 뉴스 속보가 뜬다. 30년간의 연구 끝에 김삼신 박사가 '남성 임신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만일 남자가 임신할 수 있다면 벌써 했다'는 정환의 허풍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김삼신 박사를 찾아간 부부, 얼떨결에 정환은 '남성 임신 기술'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게 된다. 2030년의 한국 출생률은 0.4명, 인구 절벽을 해결하고자 힘들게 '남성 임신 기술'까지 개발했지만 정작 지원하는 남자는 없다. 김 박사의 유일한 희망인 정환은 본격적으로 '엄마'가 되기 위해 출산 유경험자 남성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담에 정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출산하자 아내가 나를 남자로 보지 않는다", "출산하고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다", "열심히 운동해도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끔 임신을 후회한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함께 열심히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남성들의 말에 정환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병원에서 만난 임산부(父)는 불룩한 배로 울먹거리며 정환을 향해 고개를 젓는다. 임신, 이거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할아버지라면 '남자가 무슨 임신'이냐며 말릴 거라 기대하던 정환. 정작 돌아온 답은 '최씨 가문의 대를 잇는 거라면 뭐든 OK'란다. 결국 정환은 환자복을 입고 수술대에 오른다. 정환은 무사히 수술하고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두려워도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가부장제, 출산 중 사망... 현실 반영 100%
남자가 임신한다는 허구적 세계관의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지만 이야기 속 설정들은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아내 강유진은 강씨인데 매번 시험관 아기를 실패할 때마다 남편 최정환의 '최씨 가문을 네가 끊을 것'이라는 시아버지의 악담에 시달린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 개인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가부장제가 끼어들면 마치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서 취급된다.
▲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스틸컷 |
ⓒ 한국영화아카데미 |
뉴스에선 '남성 임신 기술'이 출생률을 반등시킬 열쇠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남성들의 고통은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아이를 임신하거나 출산한 남성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털어놓고 병원에선 아이를 임신한 남성은 아파서 울음을 터뜨리지만, 정작 출산 장려 포스터 속 남성은 환하게 웃고 있다. '임신'이란 영광 뒤의 상처는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남성 임신 기술'이란 새로운 소재에 한국 사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신선하다는 평가다. 인천여성영화제(7월 14일~7월 16일)에서 처음 영화를 접한 A씨는 "성별만 바꾸었다고 (영화가) 이렇게 재밌을지 몰랐다"며 "임신에 관해 여성만이 짊어지는 무게를 공감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말했다. 현장 GV에서도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관람객 평이 이어졌다.
▲ 넷플릭스 <거꾸로 가는 남자> 포스터 |
ⓒ NETFLIX |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처럼 여성과 남성이 처한 현실을 반대로 바꿔 젠더 간 사회적 환경, 차별 등을 일깨우는 '미러링' 콘텐츠가 떠오르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는 여성들이 지나가는 남성을 아래위로 훑기도 하고 함부로 성추행 하는 일이 벌어진다. 남성 인권 운동을 하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은 "부엌에나 가라"고 폄하한다. 성별만 바꾸었을 뿐인데 젠더를 둘러싼 차별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2023년의 한국은 '저출산'을 두려워하지만,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와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과 같은 여성들의 두려움에는 정작 관심이 없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 불리하기만 하다면, 그들에게 임신은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현실을 성별 전환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안 할 이유가 없는 임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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