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선택이요? 그냥 자습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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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인문고 사회과 교사이다.
1학년 '통합사회'와 3학년 진로 선택 과목 '사회문제탐구', '세계문제와 미래사회'를 맡고 있다.
3학년에 편재된 진로 선택 과목은 '학생 개인의 흥미와 진로에 따라 선택'한 과목이 아니었다.
상황은 이런데 교장 선생님은 진로 선택 과목은 수강생의 80%를 A로 만들어 주라고 한다(평가를 A, B, C 세 단계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학생들만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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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영 기자]
▲ 교실 |
ⓒ flickr |
일반 인문고 사회과 교사이다. 1학년 '통합사회'와 3학년 진로 선택 과목 '사회문제탐구', '세계문제와 미래사회'를 맡고 있다. 처음에 시간표 짤 때 걱정스러웠다. "세 과목을 어떻게 해요?" 후배 교사가 말했다. "선생님, 할 만해요. 전 네 과목도 해 봤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수업을 하며 알았다. 3학년에 편재된 진로 선택 과목은 '학생 개인의 흥미와 진로에 따라 선택'한 과목이 아니었다. '흥미와 관심이 없는 과목'이었다.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내신 과목도 아니고 수능 선택 과목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건 곧 수업하는 것이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3 학생들에게 입시는 발등의 불이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을 학생들이 할 리 없다. 교육 과정상 '선택'은 하라니까 하지만 정작 수업 시간에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선택이다. 흥미와 진로에 따라 선택한다고? '선택만' 한다. 나도 선택과 학습이 다른 개념이 될 줄 몰랐다. 현장 교사인 나도 이런데, 이런 정책을 만든 관료나 교수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수업 시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상상해 보라. 태생적으로 성실한 학생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자기 하고 싶은 과목만 한다. 강요해도 듣지 않는다. 꼰대 소리 듣는 데서 끝나면 그만인데, 자칫 학생의 자율을 인정하지 않는 인권 침해 교사가 될 수도 있다.
교사와 학생 간에는 인권 감수성의 간극이 매우 크다.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를 답안지에 써서 틀렸다고 채점했다가 학생이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인해 학교에서 차별받았다며 인권위에 제소한 사건도 있었다. 물론 '자기만' 알아보는 글씨였던지라 '차별'은 아니라고 결론났지만 그 과정의 번거로움을 생각해 보시라.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하는 건 안 돼. 다 넣고, 교과서 꺼내."
"교과서 없는데요."
"선생님, 그냥 자습 주시면 안 돼요? 다른 과목은 다 자습 주시는데..."
상황은 이런데 교장 선생님은 진로 선택 과목은 수강생의 80%를 A로 만들어 주라고 한다(평가를 A, B, C 세 단계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학생들만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어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 '보이는 대로' 써 주지 말고, '기대하는 대로' 써 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80% 정도야 뭐 껌이다. 남이 볼까 창피한 수준의 문제를 만들어 출제하면 된다.
요즘 교육 개혁에 대해 말들이 많다. 교육과 입시가 다르고, 공교육의 목적과 입시 제도의 목적이 다르건만 우리 사회에서는 입시가 고등학교의 최상위 목적이 되어 공교육을 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선택 기준이 '흥미, 선택, 진로, 적성'이 되긴 어렵다. 그들에게 선택의 기준은 '명문대'일 뿐이다. 차라리 까 놓고 교사들에게 '너희 마음대로 일타 강사처럼 가르쳐' 그래 주면 고맙겠다. 장담하는데, 일타 강사 많이 나온다. 물론 일타 강사처럼 잘 가르친다는 소문 나면 다 학원으로 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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