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비행기 난다…합성원유 1000만 배럴 뽑을 기적의 기술 [르포]
“웅~ 웅~”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의 리노시 외곽에 위치한 바이오에너지 기업 펄크럼의 폐기물 선별장(FPF). ‘세계에서 가장 큰 소(小)도시’를 표방하는 리노시 도심에서 차를 타고 약 20분 달리자 나타난 생활폐기물 선별 처리장이다. 내부를 들어가 보니 버려진 아기 기저귀, 폐비닐, 종이 포장지, 플라스틱 장난감, 음료 캔 등 쓰레기 매립장에서 ‘원료’로 공급받은 생활폐기물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알루미늄, 철 등 불연성 폐기물은 골라내고, 남은 가연성 폐기물은 3㎝ 이하 작은 조각으로 잘게 분쇄한다. 이를 인근 시에라 공장으로 보내는데, 공장 내부에는 분쇄 처리된 뒤 바싹 말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폐기물 선별장에서 코를 찌르던 악취가 시에라 공장에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합성원유, 기존 원유 대비 탄소배출 80% 절감
합성원유는 시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 기존 원유보다 탄소 배출을 약 80% 줄일 수 있다. 일상에서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가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재탄생하는 현장인 셈이다. 펄크럼의 제임스 스톤사이퍼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믿기 어렵겠지만 이 냄새 나는 쓰레기들이 비행기를 날게 해주는 항공연료로 거듭난다”고 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이 총 800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투자한 펄크럼은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고순도 합성원유를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에너지 기업이다. 펄크럼은 지난해 12월 합성원유 생산시설 시에라 공장을 세계 최초로 상업 가동했다. 펄크럼이 매년 쓰레기 매립장에서 공급받는 생활폐기물은 약 50만톤. 이를 불연성ㆍ가연성으로 분류한 뒤 재처리 과정을 거쳐 생산하는 합성원유는 약 26만 배럴에 이른다.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을 항공기로 약 180회 왕복할 수 있는 연료량이다.
‘폐기물 자원화, 에너지 혁신 모델’ 평가
펄크럼의 시에라 공장에서 만든 합성원유는 미 정유사 ‘마라톤’에 전량 공급돼 후처리 과정을 거쳐 ‘지속가능 항공 연료’(SAFㆍSustainable Aviation Fuel)로 만들어진다. 항공연료는 장시간ㆍ장거리 운항하는 특성상 수소나 전기 등 유류 대체 연료가 마땅치 않은 만큼 항공업계와 정유업계는 친환경 SAF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 일본항공(JAL), 홍콩 캐세이퍼시픽 등 대형 항공사들이 일찌감치 펄크럼 투자에 뛰어든 배경이다. 미국 정부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SAF 1갤런(3.78리터) 당 1.25~1.75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펄크럼은 12개월 내로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공장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영국 체셔 등에 10여 개의 신규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신규 공장 건립이 모두 마무리되면 연간 합성원유 1000만 배럴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 “펄크럼과 협력 더욱 확대”
국내에서도 폐기물 열분해로 연료를 만드는 시설 건립을 위한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는 등 폐기물 자원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합성원유 정제와 관련된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은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유사(석유정제업자)가 원유를 정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석유대체연료로 바이오가스연료유가 들어있긴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합성원유 정제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노=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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