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지지 않은 3만 9000명의 죽음... 이걸 잊는 건 국가폭력"
[김도균, 권우성 기자]
▲ 송기춘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 권우성 |
1948년 11월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사망한 군인의 숫자는 모두 23만 명에 달한다. 한국전쟁 기간 목숨을 잃은 13만 7899명을 빼더라도 얼추 10만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나 질병 등으로 사망한 7만 4674명 가운데 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이들이 3만 9436명(2018년 9월 1일 기준)이다.
사망한 군인이 전사자나 순직자로 분류되면 별도 심사를 거쳐 국가유공자 또는 보훈보상대상자로 예우를 받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특별한 예우가 제공되지 않는다. 망인의 죽음에 상응하는 국가적 예우는 망인의 명예와 유족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순직이 아닌 단순 사망(변사, 병사, 사망, 기타)으로 처리된 군인의 유가족은 어떠한 예우도 없이 가족을 잃은 아픔을 오롯이 홀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2018년 9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설치됐다. 진상규명위는 군인이 복무 중 사망한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고 또는 사건에 대해 진정을 접수하면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해왔다. 2021년 9월부터는 진정이 없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직권조사를 개시해 죽음의 진상을 규명했다.
진상규명위는 그동안 진정이 접수된 1787건의 사건 중 1784건을, 직권조사를 했던 56건 중 49건을 종결했다. 지난 5일 기준으로 진상규명위에서 국방부에 순직 재심사 요청을 해 전사 12명, 순직 565명이 인정되었고, 27건이 기각됐다. 기각 취지로 보류중인 사건은 5건이고, 기각 취지로 보류되었다가 순직으로 인정된 사건의 수는 10건이다. 특별법에 따라 지난 5년간(한 차례 기간연장) 활동해 왔던 진상규명위는 오는 9월 13일로 활동기간이 종료된다. 국회에는 진상규명위의 조사기간을 3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연장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난 2021년 6월부터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송기춘 위원장은 "그동안 의문이 제기됐던 군사망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진실에 다가가는 조사결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3만 9000명이 넘는 비순직 사건 중 위원회가 다룰 수 있었던 사건은 아주 일부분이었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 위원장은 "유족이 있든 없든 국가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해 마땅한 예우를 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도리"라면서 "진상규명위의 활동이 망인과 유족의 한도 풀어드리면서 동시에 군이 짊어지고 있던 큰 짐도 덜어주는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군 사망 사건 조사를 전담하는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 송기춘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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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군 이래 사망한 모든 군인에 대한 전수 조사할 필요 있어"
- 유족이 면담을 요청할 때마다 직접 만나나.
"그러려고 노력한다. 아무 데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분들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항의를 하러 오는 분들도 계시는데, 도와드릴 방법이 딱히 없을 때가 제일 안타깝다."
- 그동안 진상규명위가 다룬 군 사망 사건은 모두 몇 건인가.
"진정으로 접수된 사건이 1787건인데, 거의 종결하고 이제 3건이 남았다. 위원회 직권으로 조사한 56건 중에는 49건이 종료됐다."
- 조사 대상이 되는 사건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사건들인가.
"정확하게는 1948년 11월 30일 국군조직법이 만들어 진 후부터다. 사실 그 이전에도 국방경비대나 조선해양경비대 같은 군대가 있었는데, 이걸 빠트린 건 입법적 실수였다. 다만 1948년 8월 15일부터 11월 30일 사이 발생한 사건은 접수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 중 가장 오래된 사건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 6기 출신 장교가 피살당한 사건인데, 도저히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서 결국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됐다. 사실 2년 전 개정된 군인사법 54조 2항이 우리 위원회의 숨통을 상당히 틔워준 법안이다. 군인이 의무복무기간 중 사망한 경우 고의 또는 중과실, 위법행위나 군무이탈, 순전히 개인적인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를 빼고는 다 순직으로 분류하도록 했다. 위원회가 다루었던 사건 중 대략 50여 건이 개정된 법률 조항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 창군 이후 지금까지 군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되나.
"2018년 9월 1일까지 23만 2397명인데, 15만 7723명이 전사자로 분류됐다. 사고나 질병 등으로 사망한 7만 4674명 가운데 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분들이 3만 9436명이다."
- 비순직 군인이 3만 9천명이 넘는데, 진정으로 접수된 숫자가 1787건이라면 극히 일부분 아닌가.
"1950~1970년대 발생한 군사망 사고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데, 진정을 제기한 비율은 아주 낮다. 진정을 제기할 유족이 다 돌아가셨거나 연세가 들어 진정제기에 대해 모를 가능성이 높다. 사망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부대 동료도 고령이거나 사망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최근 발생한 사망사건에 대한 진정 비율은 높은 편이다."
- 당초 진정이 들어온 사건에 한해 조사하도록 한 것은 진상규명위 출범 당시부터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 송기춘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 권우성 |
- 자료를 보니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군사망자 숫자가 매년 수천 명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1954년부터 1958년까지는 매년 2000명 이상의 군인이 목숨을 잃은 걸로 나온다. 해마다 보병 연대 규모의 군인들이 사망했다는 건데, 도대체 당시 군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가.
"한국전쟁 직후여서 불발탄이나 지뢰 폭발 사고가 많았다. 부대 내 위생상태가 열악했고 충분한 영양도 공급받지 못해서 결핵 같은 질환에 감염돼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부대가 돈이 없으니 군인들을 돈벌이에 동원했다가 안전사고로 사망한 경우도 꽤 많았다. 위원회에서 다룬 사건 중에는 이 시기 이른바 '후생사업'을 위해 군용트럭 한 대를 가지고 임산물 운반 사업을 하다가 자동차가 고장나 군에 납부할 돈이 밀리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군인 사건도 있었다."
- 지난 2월 진상규명위는 1956년에 사망 처리된 군인 2986명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위원회에 진정된 사건 중에 1956년에 돌아가신 분이 계셨다. 왜 돌아가셨는지 참고인 진술들을 살펴봤더니 비슷한 시기 같은 부대에서 누구누구도 죽었다는 거다. 이렇게 범위를 점차 넓혀가다 보니 별 기기묘묘한 사연으로 사망한 분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군에다 요청하기 주저될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다행히 군 당국이 협조를 해줘서 자료를 받았다.
당시 기록은 주로 매화장 보고서였는데, 이것만 살펴봐도 당연히 순직으로 처리되었어야 할 죽음이 변사로 처리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행정착오나 오기, 오분류로 단순 사망으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214명을 찾아냈고, 이 분들에 대해 순직으로 재심사 해 줄 것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 순전히 서류만 검토해서 찾아낸 결과였다.
▲ 송기춘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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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망 사고, 군 지휘계통서 독립된 기관이 독자적인 조사해야"
- 군 사망 사고 기록들을 살펴보면 과거 헌병(군사경찰) 수사나 조사 과정의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나.
"군사경찰 역량이 최근에 와서는 좀 나아진 느낌이 있는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사의 신뢰성이 굉장히 부실했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수사한 사실을 감추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0년 5월 29일 발생한 35사단 항공대 방위병 익사 사건이다. 그때가 언제인가. 광주 도청이 계엄군에게 함락되던 그 긴박한 시점에 방위병이 한가하게 부대 옆 방죽에서 수영을 하다 빠져 죽었다는 건데, 더군다나 5월이면 아직 물이 차가울 때다.
유족들이 현장에 갔더니, 거기 있던 낚시꾼들이 며칠 전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놓던 군인이 빠져죽었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거다. 군에서는 유족들 재조사 요청을 딱 잘라버렸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은 항공대장이 헌병대에 가서 자수했다. 사실은 자신이 계엄군들 부식으로 쓰려고 물고기를 잡으라고 시켰던 거다. 헌병은 이런 사실을 다 파악하고도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마도 사단장이 문제 삼지 말라고 시켰을 거다. 그 뒤 항공대장은 훈장도 받고 무난하게 군대생활 하다가 제대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믿기지 않는다.
"이게 군 수사의 전형적인 폐해다. 가장 큰 문제가 수사기관이 조사까지 맡고 있다는 점이다. 헌병은 본질이 수사기관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범죄혐의가 없으면 수사를 종결한다. 그런데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임무까지 같이 맡고 있으니, 그다음부터는 소설을 쓰는 거다.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쓴 편지가 발견되면 개인 신상 문제, 가정불화 때문에 자살했다는 식이다.
지휘선상에 있는 군 내부 기관이 사망원인까지 밝히는 업무를 맡고 있으니 필연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군 사망 사고는 군 지휘계통에서 독립된 기관에서 독자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국가보훈부라도 독자적 조사를 거쳐 거기서 확정된 사실을 기초로 보훈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 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자해사망자는 1만3000명에 달한다. 지난 2015년 군인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자해사망자도 순직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1만2000명이 일반사망자로 처리되어 있다. 군 자해사망 사건은 대부분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나 과도한 업무 등 병영부조리가 죽음의 원인과 관련되었을 걸로 생각되는데.
"군인은 특수신분이다. 아무리 편한 부대에 가서 '꽃보직'을 받아도 군대 생활이라는 게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군대 내부의 부당한 요인이 결합해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타살과 같다고 봐야하지 않겠나. 이게 어떻게 개인적 사유인가. 맞아 죽을 때까지 참다가 죽어야 순직이 되는 건가. 의무복무 중 사망한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순직으로 본다는 법 취지가 제대로 반영됐다면 이런 사건들이 왜 아직도 순직이 아니라는 건지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 송기춘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 권우성 |
- 오는 9월 13일이면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된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활동 기한 연장을 담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어떤 상황인가.
"없는 희망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도 국회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입장이 중요하다. 시민사회수석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넣고 했는데 아직 답신을 받지 못했다. 국방부 장관과 면담 요청을 했는데, 8월 중에나 한 번 보자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같이 보조를 취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인권위에서는 우리 위원회 활동을 연장하는 걸 주요의제로 다루겠다고 하는데, 인권위에 설치된 군인권보호관이 위원회 기능을 흡수해서 좀 더 조직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 군 사망자 숫자가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군대가 유지되는 한 안타까운 죽음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 군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보더라고 국민들은 군 당국의 조사를 여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군으로부터 독립된 조사기구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위원회를 해산하는 비용만 3억 원가량이 든다. 또 이후에 새로운 기구를 구성하게 된다면 조사인력을 선발하고 진용을 갖추는 데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런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한창 조사역량이 최고조에 오른 진상규명위를 이대로 해산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 군사망 사고 관련자의 피해와 명예회복이라는 진상규명위 설립 취지에 비추어 보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군 사망사건이 많이 남아있다. 고인들이 국가의 부름에 따라 군복을 입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군인의 죽음에 대해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국가가 포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군인이 휴가 나와서 죽으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데, 그 부분도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사실 휴가를 나와서도 계속 부대의 감시·감독 아래 있고,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가치를 지켜야 한다. 입대할 때부터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단계에서 안전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3만 9000명의 죽음을 그냥 이대로 잊혀지게 한다면 그것은 국가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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