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 무너질것 같아요" 노부부에 방 공짜로 내준 모텔주인
숙박업소가 이재민에게 방을 무료로 제공하고, 이웃은 경로당에 반찬을 나르고 있다. 산사태와 폭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 다수 발생한 경북 예천군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노부부 가족에 방 무료 제공한 모텔
지난 17일 오후 10시쯤 경북 예천군 예천읍 한 모텔. 비가 쏟아지던 시각 8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모텔에 들어섰다. 아내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노부부는 “집에 산사태가 날까 봐 무서워서 읍내로 나왔다”며 방을 달라고 했다.
이곳은 고향이 예천인 김갑연(69)씨 부부가 8년 전부터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모텔이다. 모텔 측은 노부부에게 무료로 방을 내줬다고 한다. 김씨는 “다음날 병원에도 가야 한다고 하셔서 편하게 쉬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모텔에는 전날에도 “방이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왔다. 김씨가 방 가격을 안내하자,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혹시 좀 더 싸게 해주실 순 없느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 식당이 무너졌는데 4명이 함께 잘 곳을 찾고 있다”라고 했다. 김씨는 “20일에 단체 숙박이 예약돼 있는데 그전까지는 무료로 방을 내줄 테니 오라”고 했다. 모텔을 찾은 가족을 인근 식당으로 데려가 저녁 식사도 대접했다.
이런 김씨 선행은 16일 오후 예천군청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예천군청 ‘칭찬합시다’에 올라온 글에는 “삶의 터전을 잃으신 어머님을 도와드리고자 예천으로 부랴부랴 달려왔다. 어머니 식당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많은 지역 주민이 멍하니 떠내려간 집과 황폐해진 밭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힘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잘 곳이 없어 숙소를 찾던 중 모텔 사장님이 방을 무료로 제공해 주셨다”며 “그러곤 앞장서시더니 식당에서 저녁을 선결제하시던 사장님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과 표현할 수 없는 선의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산사태로 처참히 무너진 집 사진을 보고 놀랐다”며 “예천군민으로서 당연히 도와야 했다. 빨리 수해가 복구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경로당 대피 주민 도우미로 나선 이웃
산사태가 발생해 13가구 중 5가구가 매몰된 면 백석리에서는 경로당에서 지내는 어르신 8명을 위해 아랫마을에 사는 이웃이 반찬을 나르는 등 생활을 돕고 있다. 이번 산사태로 집을 잃었다는 70대 주민은 “화장실도 임시로 써야 하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대피소에 가기엔 늙고 힘들어 고민했다”며 “이웃이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물과 간식을 준다. 무엇보다 구조작업 중인 소방대원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대피소에도 식료품 등 답지
대피소로 지정된 예천군문화체육센터에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BGF리테일·농심 등 유통업계는 푸드팩·생수·라면·이온음료·초코바 등을 지원했다. 예천군보건소는 주간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며 이재민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상담을 하고 있다. 소방상황실이 있는 예천스타디움에서는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가 매일 500인분이 넘는 밥차를 준비해 소방대원들과 이재민들이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18일 오전 9시 기준 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19명, 실종 8명, 부상 17명이다. 실종자는 모두 예천 주민이다. 주택 매몰과 침수 등으로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경북 지역 이재민은 1087가구 1622명이다.
예천=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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