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128엔VS160엔"…달러당 엔화 환율, 어디까지 갈까
내년 6월 128엔까지 오를 것"
"작년과 같은 엔저 쇼크 가능성
달러당 160엔까지 갈수도
엔화 방향성 불확실성 커지자
투자자들도 고민 깊어져
지난달 한때 달러당 145엔대를 돌파했던 엔화 환율이 다시 138엔대까지 하락하면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일본 정부가 시장 개입을 시사하기도 했지만, 당국의 개입 흔적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엔화가 고개를 들면서 갈피를 못 잡게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달 24일 열리는 일본은행(BOJ)의 정책결정회의에서 매파적인 결정이나 의견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 영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주요 투자 포인트기도 한데, 엔화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18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오전 7시5분께 138.64를 기록했다. 엔화 환율은 지난달 30일 장중 한때 145엔까지 올랐으나 최근 일주일 새 엔화 가치가 5엔 이상 오르며 지난 12일 기준 환율이 140엔 선 밑으로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다시 130엔대를 회복한 것은 지난달 12일 이후 한 달 만이다.
BOJ가 10년간 유지하던 완화적 통화정책의 방향키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엔화의 가치를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가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 등 금융 완화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일면서 엔화를 매수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물가 진정은 올해 2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강도를 낮출 수 있다. 시장의 이 같은 기대감은 달러 가치 하락으로 드러나고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엔화는 강세를 띠게 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평균 가치를 뜻하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4일 99.96으로 장 마감을 했다. 달러 인덱스가 100선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4월21일 이후 1년3개월여 만이다.
BOJ 입장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성 재무상(장관)은 지난달 28일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외환시장에) 최근 다소 일방적인 움직임이 있다"며 "지나친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개입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BOJ는 지난해 여러 차례에 걸쳐 약 9조엔(약 82조원)에 달하는 엔화를 매수한 바 있다. 당국이 처음 시장에 개입한 시점에 엔화 환율은 145.898엔이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안전자산 엔화 부상…연말 135엔까지 상승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이유로 현재와 같은 강세 추이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주요국의 경기가 위축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반다리서치의 비라즈 파텔 전략가는 "글로벌 경제의 경기 침체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올해 말과 내년 들어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경제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약 20%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엔화는 미국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헤지 수단으로 활용됐다. 지난 3월에는 실리콘벨리은행(SVB)에서 시작된 금융시스템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SVB 파선 전 137엔대에서 머물던 엔화 가치가 131엔대까지 뛰었다.
엔화 가치가 50여년 이래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투자 매력으로 작용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월1일 기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73.1을 기록하며 변동환율제를 시행한 1973년 이전에 집계된 최저치(67.9)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50년간의 평균값인 113.6을 한참 하회하는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국가의 통화가 상대국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표시한다. 이 수치가 100보다 낮으면 환율이 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낮은 실질실효환율과 경기 침체 두 가지 요인을 근거로 엔화 가치가 연말 135엔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가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환율 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대다수는 올 9월 138엔을 시작으로 내년 6월엔 엔화 가치가 128엔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화 가치가 이보다 더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UBS의 도미닉 슈나이더 글로벌 환율 및 원자재 총괄은 "올 연말 엔화가 128엔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경기 침체 시기가 엔화 환율의 등락을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日 금리 격차 확대…엔화 가치 160엔까지 하락할 수도이 같은 장밋빛 전망과 달리 일본 외환시장에 지난해와 같은 엔저 쇼크가 닥칠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확대되면서 엔화가 약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은 내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32년 만에 최고수준인 달러당 160엔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7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일본의 상반된 통화정책으로 양국 간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엔화 매도세가 강해지고 있다"며 "BOJ가 긴축 기조로 통화정책을 전환하기 전까지 엔화 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친 1990년대 후반 재무성 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재임 당시 외환시장에 공격적으로 개입해 엔화 가치를 크게 떨어뜨린 바 있어 ‘통화 차르’ 또는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을 돌파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 엔화 가치가 17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고했지만 BOJ의 통화정책 수정과 외환시장 개입 여파로 엔화 가치는 올해 초 120엔대까지 상승했다.
JP모건은 지난 7일 엔화 가치가 올해 연말 142엔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기존 전망을 상향 조정해 152엔대로 하락 폭을 높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같은 기간 엔화가 145엔으로 현재 수준보다 엔화 가치가 4% 소폭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는 "자산운용사들이 지난주에도 엔화 약세 베팅을 추가로 늘렸다"며 "월가에는 아직도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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