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화의 직필] 정말 462편의 영화들이 관객수를 조작했을까?
전형화 2023. 7. 18. 10:35
과연 462편의 영화들이 관객수를 조작했을까?
17일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정례 간담회에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관객수가 조작된 영화 편수는 전체 462편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경찰청 반부패, 공공범죄수사대가 지난달 13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와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키다리스튜디오 등 배급사 3곳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영화 관객수를 허위로 집계해 박스오피스 순위를 조작하며 영화진흥위원회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조작된)관객수가 정확히 얼마나 됐는지 대충 정리됐지만 아직 상세하게 발표할 내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발표만 들으면 그야말로 영화계가 관객수를 조작해 관객을 현혹하는 악덕이 판치는 곳으로 여겨진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좀 다르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회사는 비단 6곳 뿐만이 아니다. 주로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회사 등 영세한 회사 대표들도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이 조사를 하면서 혐의가 있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관련된 배급사 관계자들을 계속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를 받고 온 복수의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관행이라고 여겨졌던 것과 마케팅적인 부분들, 실제 조작 사례 등이 모두 관객수 조작행위로 의심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예컨대 영화 기자시사 후 이뤄지는 기자간담회는 통상적으로 같은 시사 장소에서 열린다. 이때 배급사는 극장에 대관료를 내는 게 아니라 예매권으로 제공한다. 즉 500석 규모로 기자시사회를 열면, 그 뒤 기자간담회도 500석 규모로 예매권을 제공한다. 예매권으로 제공하면, 관객수 카운팅도 되기에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자 간담회 좌석이 모두 차는 게 아닌데 예매된 모든 좌석이 관객수로 카운팅되는 건 관객수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빵원티켓, 스피드쿠폰 등 이벤트성 극장 할인 티켓도 마찬가지다.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빵원티켓 등은 마케팅용이자 데이터로 활용된다. 얼마나 빨리 마감되는지가 영화 흥행 지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이벤트로 이 같은 행사를 하는데, 이 때 예매권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예매권이 모두 소진되는 게 아니라는 점.
빵원티켓 등에 당첨된 사람들 모두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지만, 관례적으로 이 예매권들도 모두 소진된 것으로 처리해왔다. 경찰은 여기에도 관객이 실제 극장에서 안 봤는데 카운팅이 된 건 관객수 조작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후문.
또한 클라우드 펀딩 등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 저예산영화들은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관례적으로 예매 티켓을 제공한다. 이 티켓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이 예매 티켓도 모두 소진된 것으로 처리한다. 이 티켓 소진도 실제 극장에서 관객이 보지 않았다면 관객수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실제 영화 관객수 집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할 뿐더러 자체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것이기에, 각 영화의 총제작비(순제작비+P&A비용)에 포함된다. 빵원티켓 등 극장에서 하는 이벤트성 행사는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각 영화의 총제작비에 포함된 금액으로 벌어지는 프로모션용 행사이기에, 관객수 증가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관객수가 늘어난들 총제작비에 포함된 것이기에, 수익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료로 제공하는 VIP시사회와 일반 시사회도 마찬가지다. 이 관객수들도 카운팅에 포함되는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영화계에선 차제에 이런 관행이 없어지고 통대관으로 비용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은 한 관계자는 “극장이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의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이런 관행은 대체로 극장에 좋은 일인 만큼 이번 기회에 정리가 되는 것도 향후를 위해선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럴 경우 비용 문제로 빵원티켓, 스피드쿠폰 등 티켓 할인 또는 무료 행사와 일반시사는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극장요금이 인상된 뒤 공짜티켓과 할인티켓이 남발돼 티켓 가격에서 제작사에 돌아오는 객단가가 낮아지고 있다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터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할인티켓, 공짜티켓은 사실상 배급사와 제작사에 돌아오는 몫이 없다. 이런 관행을 관객수 조작으로 처벌받는다면 굳이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번 조사는 심야 또는 새벽에 관객이 없는 시간대에, 심지어 극장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마치 관객이 든 것인양 처리돼 관객수를 허위로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 중에는 실제로 경쟁이 치열할 경우 예매율을 올리기 위해 프로모션용 예매권으로 유령상영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중 그렇게 경쟁이 치열한 때가 몇 되지 않을 뿐더러 경찰의 조사기간인 2019년부터 2023년 중 2020년부터 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다.
유령상영 중 상당수는 프로모션용으로 예매권을 확보했지만 영화가 인기가 없어서 예매권이 다 소진되지 않아,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올 즈음 새벽 시간대에 그 예매권을 태우는 경우들이다. 말그대로 태운다고 표현한다. 이런 예매권은 사용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제 때 사용 못하면 태워버린다. 이것도 관객수 조작이라면 조작이지만 자체 프로모션용 비용이기에 배급사에 이익은 없고 관객수 증가도 미비하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워낙 관객수가 적었기에 이런 관객수 증가도 박스오피스 순위에 영향을 줘서 눈에 띄었을 뿐이다.
경찰은 조만간 이번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객수를 조작한 영화 숫자와 그렇게 조작된 영화관객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발표한 462편은 얼핏 개봉한 영화 숫자들과 비슷해 보이고, 향후 발표할 조작된 영화관객수도 몇십만명 이상이 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영화계가 철저히 관객을 우롱하고 속이는 집단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과연 영화계가 관객 숫자를 허위로 늘려서 속여 먹는 집단이었는지, 숫자만 보면 속내를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의도에 속기 쉽다.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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