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와인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야 하는 이유 [쿠킹]

이철형 2023. 7. 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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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지역의 새로운 콘텐트로 자리한 대표적인 지역은 영동이다. 사진 영동와인터널 홈페이지

한국 와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용어부터 짚고 가겠다. 한국 와인과 혼동되는 용어는 국산 와인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는 의미로 넓게 보면 같은 말이다. 하지만, 좁혀보면 다르다. 해외에서 대량으로 와인을 들여와 병에 넣거나, 극히 일부 한국에서 재배된 포도를 섞어 블렌딩만 해도 국산 와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 칼럼에서는 재배부터 양조까지 전 과정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와인에 대해서만 다루고 이를 ‘한국 와인’이라 부르려 한다. 프랑스 와인, 이탈리아 와인, 미국 와인이라 부르듯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 와인이 처음 소개된 것은 고려 충렬왕 때다. 조선 시대에 편찬한『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원 황제(쿠발라이 칸)가 고려왕(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하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후에도 원나라와 관련 깊은 고려 학자들이 종종 와인이 선물 받았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대일통신부사 김세렴이 쓴 『해사록(海笑錄)』에는 ‘레드와인을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대좌하면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동양 맥주에서 73년 개발한 국산 포도주, 마주앙. [중앙포토]

한국 와인은 1960년대 중반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리슬링 와인을 마셔본 후, 모래와 자갈이 있는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포도이기에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는 곡식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해 이를 장려한 것이 그 시작이다. 1973년 경북 청하와 밀양에 동양맥주(지금의 OB맥주)가 포도원을 조성했는데, 이곳에서 4년 후인 1977년에 ‘마주앙(MAJUANG)’이라는 한국 최초의 와인이 출시됐다. 당시 마주앙은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이 인정한 공식 미사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OEM 방식으로 해외에서 만들어 수입하거나 오크통째 수입해, 국내에서 병입하거나 국내에서 생산된 와인을 일부 블렌딩해 판매하는데 미사주만큼은 전용 농장에서 국내산 포도만으로 생산하고 있다.

와인 하면 대부분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떠올리지만, 사과나 열매 등의 과일로 만든 과실주도 와인이라 부른다. 사실 과실주로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1969년 사과로 만든 술인 파라다이스라는 브랜드의 술 즉 시드르(Cidre)이다. 동양맥주보다 먼저 1974년 해태 주조가 리슬링과 시벨품종으로 노블 와인을 만들었는데 1975년 국회의사당이 설립되었을 때 그 입구 양쪽 해태상 밑에 이 와인을 36병씩 묻어두었다가 100년 후에 개봉하기로 해서 아직도 거기에 있다. 해태는 그룹이 해체되어 더는 와인을 생산하지 않지만 2075년에 공개될 와인을 역사에 남겼다.

80년대 호황이었던 한국 와인, 90년대 쇠락을 길을 걷다.
80년대에 호황이었던 한국 와인은 87년 말 수입 와인 시장이 민간에게 개방되면서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농가형 와이너리들이 생겨나면서 부활의 기미가 보였으나, 기후적으로 불리한 조건, 양조 기술의 부재 등으로 품질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2010년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생기면서 와인이 지역의 새로운 콘텐트로 불리게 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충북 영동군이다. 충북 영동군은 영농조합 형태의 기업형 와이너리로 시작해 지자체가 지속해서 20년 이상 투자한 결과 와인 관광 열차 운영, 와인 동굴 개발, 와인 페스티벌 개최 등 지역의 다른 관광자원과 콘텐트를 엮어서 복합 문화 관광지로 발전시켰다. 또한 지자체가 지역 와이너리의 마케팅 겸 판매를 후원했고, 그 결과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지역의 숙박이나 음식업 활성화와 지역 특산물의 홍보까지 함께 도모하게 되었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영동와인터널, 길이 420m 규모로 5개 테마의 전시관과 문화행사장,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이 있다. 사진 영동군

경북 영천군 역시 포도 특구로 지정된 이후 지역 와인 생산자들과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의 컨설팅을 받으며 함께 성장해오고 있다. 대부도의 농업법인 역시 여름철 와인 축제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광명 와인동굴을 시작으로 영동 와인 동굴 등 각 지역에 여러 개의 와인 터널이 생겨나 지역 영농법인 와이너리들의 전시 판매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포도품종이 개량되고, 한국 와인이 해외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한국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한국 와인을 접하긴 쉽지 않다. 와인은 대형마트와 와인 샵 등 샵 시장의 비중이 80% 이상인데 한국 와인이 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가 있다. 와이너리들의 생산량이 소량이어서 대량 유통에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아직 높지 않고 가격대도 수입 와인에 비해 높다고 생각해, 잘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와인과 한국 와인
그럼 가까운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와인 문화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오면서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일찍이 19세기 메이지 유신 때 사케 생산자의 아들을 유럽에 유학시켜 선진 양조 기술을 배워오게 하고 사케 기술에 접목하게 하는 한편 와인 생산에 집중했다. 여기에 경제 대국으로 일본의 식문화까지 세계로 확산하면서 일본 토착 품종인 코슈(甲州)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자체 개발한 뮈스캇 베일리 에이(Muscat Bailey A)로 만든 레드 와인도 해외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사실 우리보다 환경이 좋다. 동경에서 북쪽으로 신칸센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 현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은 유럽의 기후처럼 8~9월 포도 수확기에도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수입 와인 대 자국 생산 와인의 비중이 60:40 정도다. 하지만 일본도 자국 내 포도재배부터 양조까지 한 후 자국 내에서 판매되는 와인은 전체 와인 시장의 4%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일본 와인은 100% 자국 내 생산 와인의 경우 가격 측면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 와인 시장 전체 규모가 우리의 10배 이상이니 4%일지라도 큰 규모인 셈이다.

한국 와인도 가능성은 있다. 한류 문화의 세계 확산을 타고 고급화된 한국 와인이 국내외 품평회에서 입상하면서, 서서히 한국도 제4의 와인 생산국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량이나마 수출하기 시작했다. 고추장·된장·간장이 미쉐린 레스토랑이나 유명 셰프들 사이에서 열풍이라니, 분위기는 유리하게 조성된 셈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국산 품종 ‘청수’. 사진 264청포도와인 홈페이지

또, 키워볼 만한 한국 토착 품종도 있다. ‘청수’다. 청포도 품종인데, 잘 만들면 확실하게 해외의 어느 와인보다도 독특하면서도 맛이 있다. 그리고 양조용 포도로 만든 와인에 식용 포도로 만든 와인을 블렌딩해, 새로운 맛과 향의 영역을 열면 된다. 여기에 더하여 매년 소비자가 동일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게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만 하면 한국 와인도 해 볼 만한 게임이 된다. 이것은 와인 생산자들의 기술 능력이 향상되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와인의 현주소를 와인 전문가와 소비자들이 함께 점검하고 수입 와인과의 차이도 비교해서 시장 가능성도 확인해보아야 한다. 이로써 생산자들이 향후 개선 방향을 찾는데 영감을 주는 체계적 노력을 병행해야 할 때다. 할 수만 있다면 해외 소비자들도 평가에 참여할 수 방법도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 한국 와인이 해외 유명 호텔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 한식과 함께 와인리스트에 자랑스럽게 올라갈 그때를 기원해보자.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불리한 기후조건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철형 와인소풍 대표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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