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집에 온 장모님은 왜 자꾸만 가신다고 했을까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권진현 기자]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경제 활동을 계속하시던 장모님께서 지난달 일을 그만두셨다. 계획에 없던 퇴직으로 육체는 휴식을 얻게 되었지만 마음은 착잡해 보이셨다. 60 평생 쉼을 경험하지 못한 장모님께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 우리 집에 와."
둘째가 말했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이 주말에 별다른 일정이 없는 것을 수 차례 확인한 후에야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매주 보는 외할머니의 방문이 무척 즐거운 듯 환호했다.
방문하시기로 한 토요일 하필 종일 비가 내렸다. 대중교통으로 오시기 불편하실 것 같아 모시러 가려고 연락을 드렸는데, 이미 출발을 하셨다고 한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오는 데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역까지 모시러 간다는 나의 말을 장모님은 한사코 거절하셨다.
"뭐 할라고. 마을버스 타고 가면 된다. 권서방 나오지 마라."
비를 뚫고 도착하신 장모님의 양손에는 짐이 가득했다. 국수를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다시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귤을 사들고 오신 것. 짐을 내려놓고 손주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신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집이 와이래 좁아졌노."
작년 초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올 당시 공사를 진행했었다. 입주 전 가전제품과 가구가 아직 없을 때, 장모님께서는 딸이 사는 집을 직접 청소해주고 싶다며 딸과 함께 집을 방문하셨다. 1년이 훌쩍 넘어 재방문한 딸의 집이 당신의 눈에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좁아 보였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장모님은 주방으로 가셨다. 처가였다면 혼자 밥을 하셨겠지만, 이번에는 아내도 적극 거들었다. 그렇게 모녀의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부엌이 낯설었던지 장모님께서는 음식 재료들을 찾으며 여러 차례 물어보셨다. 육아휴직 이후 생활요리 담당인 나는 장모님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즉각적인 답변을 해드렸다.
"맛술(미림)은 밥솥 아래 하부장에 있습니다."
"양념장은 다른 거 말고 진간장으로 해주세요."
"통깨는 냉동실 위에 빨간통 바로 보입니다."
▲ 모녀가 국수를 만들고 있다. |
ⓒ 권진현 |
면을 삶는 냄비가 크지 않아 면을 한 번에 많이 삶지 못했다. 면을 삶은 후 나와 아이들이 먼저 먹었다. 남은 면을 장모님과 아내가 함께 먹기에는 부족했다. 서로를 향해 먼저 먹으라고 말하던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오랜 대립 끝에 딸을 이기지 못한 장모님이 결국 먼저 국수를 드셨다. 이후 새로 삶은 면으로 국수를 먹던 아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설거지하지 마라."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모님의 손에는 이미 세제 거품이 가득한 수세미가 들려 있었다. 아내는 국수를 먹으며 엄마를 향해 계속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장모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꿋꿋하게 설거지를 하셨다. 이번에는 아내의 패배였다.
▲ 장모님과 아내가 함께 만들었던 국수. 국수는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이다. |
ⓒ 권진현 |
"갈란다."
국수를 드시고 잠깐 쉬시던 장모님께서 갑자기 일어나셨다. 좀 쉬었다가 가셔도 되는데 장모님은 자꾸만 가겠다고 하신다. 혹시 딸의 집이 조금은 불편하다고 느끼신 것일까.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본가와 처가를 매주 방문하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놀아주고, 한 주간 먹을 반찬을 양가에서 받아오는 것은 어느덧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양가 부모님댁을 방문하는 빈도 수로만 따지면 상위 3% 안에는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모님은 왜 자꾸만 가신다고 했을까. 그러고 보니 10년이 넘도록 우리가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것은 익숙했지만, 부모님이 아들 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부모님들은 우리의 초대가 없이는 1년이고 2년이고 집에 오시지 않았다. 어쩌면 장모님이 우리 집을 어색하게 느끼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초대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외출을 한다. 먹고살기 바쁘고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핑계로 부모님은 항상 뒷전이다. 갑자기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 영 어색했을 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한 것은 딸과 사위가 아닌 6살 손주였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늘 강조한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려고 노력해 왔다. 매주 자녀들과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고 자위했다. 하지만 사위의 집에서 뭔가 어색해 보이던 장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까?
첫째가 한창 어릴 때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전라도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다. 잘 나가지도 않는 오래된 중고차에 5명이 억지로 타고 간 여행이었다. 두 분은 귀찮게 무슨 여행이냐고 하시면서도,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린 채 쑥을 캐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들 딸, 손녀와 함께한 그 시간을 당신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어느덧 두 어머니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부쩍 야윈 몸과 갈수록 굽어지는 등을 보면서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매주 방문하는 아들 딸, 손주를 대하는 당신들의 마음이다.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워낙에 부족한 자식이다 보니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지금도 걱정을 끼쳐드리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적어도 부모님이 아들 딸의 집에 머무는 것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17년 4월 두 엄마와 손녀가 전라도에서 찍은 사진. |
ⓒ 권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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