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윤 대통령 순방에서 구멍 뚫린 게 수해뿐일까
[이충재 기자]
▲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순방 중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국가 컨트롤타워로서의 대통령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국내에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방문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윤 대통령이 수해 사실을 제대로 보고받고 있었느냐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보최고의결기구인 NSC 의장(대통령)과 상임위원장(안보실장), 사무처장(안보실 1차장)이 동시에 국내를 비운 상황에 대해서도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집중호우와 관련해 지시를 내린 건 토요일인 지난 15일 오후 4시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군·경 포함해서 집중 호우에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밤새 폭우와 산사태로 사망·실종자가 속출한다는 뉴스가 토요일 아침 온 국민을 깨운 지 한참 지난 뒤였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윤 대통령의 지시는 14일 저녁에 나왔어야 하는데 뒷북 지시를 내린 셈입니다. 윤 대통령이 국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전후 사정을 보면 그 시간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로 가는데 편도 14시간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단에게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 보도유예를 당부했습니다. 보안 유지를 위해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사용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향후 수 시간이 우리에게도, 기자들에게도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의 뒷북 수해 지시는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이동 중 국내 수해 소식 제대로 보고 받았나
궁금한 것은 윤 대통령이 10여 시간의 기차이동 중 국내 수해 소식을 보고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국내에서 더 큰 위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속수무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단 일분일초라도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과의 연락 두절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정확한 진상이 규명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실 참모들이 국내 수해 피해를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 나토 순방 중인 지난 12일 북한이 ICBM 도발 때 국가 안보시스템도 도마에 오릅니다. 당시 윤 대통령은 화상으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윤 대통령 외에 동행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 리투아니아 현지에서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화상회의를 지켜본 안보전문가들은 NSC 핵심 인물인 의장과 상임위원장, 사무처장이 동시에 해외에 머무는 모습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통상 북한이 도발할 경우 수위에 따라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 전체회의와 안보실장 주재의 상임위원회, 1차장 주재 상황점검회의 등을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 대응의 핵심 주체가 한꺼번에 해외 출장을 나간 것을 정상적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북한이 무력시위성 도발을 넘어 직접적 무력 공격을 감행하거나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사태가 빚어졌을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혹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컨트롤타워 수뇌부의 동시 부재에 따른 국가적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 문제는 안보실장과 1차장이 동시에 대통령 해외 순방을 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첫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당시 김성한 안보실장이 국내에 남았던 때를 제외하곤 순방 때마다 이런 상황이 계속돼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전 정부에선 전례를 찾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국가안보실은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까지 가정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화상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수해 대응지시를 내렸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장 한국으로 뛰어가도 수해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해외에서 지시를 내리는 것과 국내에서 재난과 위기의 컨트롤타워가 돼 진두지휘하는 건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더 중요한 건 대통령이 해외에 있더라도 국민 생명이 걸린 사안은 최우선으로 보고받고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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