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반도체기업 엔디비아까지 AI 신약 개발 뛰어드나?
전 세계엔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뿐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에선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AI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접목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바이오업계에선 오픈AI 챗GPT의 등장 이전부터 AI에 주목해 왔다.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 높은 관심을 가졌다. 신약 개발은 제약 업계에선 ‘꽃’으로 표현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다. “신약 개발을 하지 않는 기업은 죽은 기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사업인 탓에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았다. 평균 15년의 기간과 1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신약 개발은 성공하면 막대한 수익을 오랜 기간 얻을 수 있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기업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커지는 글로벌 AI 신약 시장… 2027년 40억 달러 넘는다
AI가 이 분야에서 높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성공률까지 높일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타깃 선정, 후보물질 발굴, 설계·합성, 검증 과정, 임상 등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 수십만 건의 논문 등을 찾아보게 되는데, AI가 도입되면 수십 명의 연구자가 투입돼야 할 일을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업계에선 AI 기술이 정착되면 새로운 약을 만들어내는데 걸리는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18일 “15년이 걸렸다면 7년 정도로 줄어들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건비 감소 등으로 연구비도 크게 줄이게 된다. 이 관계자는 “AI가 후보물질 설계부터 시작해 유전체 등 생체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임상과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최적의 환자군을 도출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AI 신약 시장은 매년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은 신약 시장이 2021년 4억1320만 달러(5330억원) 수준에서 매년 40% 이상 성장해 오는 2027년 40억350만 달러(약 5조 166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제약·바이오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미국과 유럽의 관심이 뜨겁다. 미국은 2020년 1억1750만 달러(1516억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매년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2027년에는 19억4050만 달러(2조5042억) 정도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확대율이 약 48.4%다. 유럽은 2027년 11억6890만 달러(1조5078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제약사부터 반도체기업까지 뛰어들어
글로벌 제약사들은 일찌감치 AI 벤처들과 협력 체계를 갖췄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는 IBM 왓슨을 이용해 면역 항암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왓슨이 방대한 양의 암 관련 연구 데이터를 수집해 의사 결정 과정에 조력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노바티스는 AI혁신연구소를 설립해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업계 최초로 전세계 임상시험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디지털 기반 기계 학습 예측 분석 플랫폼인 ‘너브 라이브’도 출시했다. 얀센은 영국의 베네볼렌트AI와 협력해 임상 단계 후보물질 평가, 난치성 표적 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수백만 종류의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AI가 대신해준다. 머크는 아톰와이즈의 AI 기술을 도입해 하루 만에 에볼라에 효과가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2개나 찾아내기도 했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정부 주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케다·에자이 등 일본 제약사와 후지쯔·NEC 등 IT 기업들이 일본 정부 산하 이화학연구소, 교토대와 함께 신약 개발용 AI를 개발하는 ‘라이프 인텔리전스 컨소시엄’을 출범했다. 중국도 AI에 주목한다. 텐센트홀딩스는 크리스탈파이에 자금을 투자했고, 바이두의 창업자인 리엔홍은 ‘바이오맵’이라는 AI 기반 신약개발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제약사뿐 아니라 반도체 기업들도 AI 제약 시장으로 진출을 노리고 있다. 최근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바이오기업인 리커전의 AI 모델 개발을 위해 5000만 달러(약 64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리커전은 AI 모델을 통해 발굴하고 설계한 신약과 치료법을 ‘리커전 OS’ 플랫폼을 통해 의약품 제조업체에 제공한다.
한국, 신약 개발 플랫폼 ‘K멜로디’ 프로젝트 추진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AI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AI팀들 신설하거나 AI스타트업과 협력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2019년 5~6개에서 2023년 30여개로 확대됐다. 약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도 4년 새 약 50개로 5배 가까이 늘었다.
SK케미칼은 국내외 AI 신약 개발 기업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닥터노아바이오텍과 협업 1년 2개월 만에 비알코올성지방간염과 특발성폐섬유증 치료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AI 기반 신약 개발 스타트업 아이젠사이언스와 AI 기반 항암신약 작용 기전 규명을 위한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AI신약팀을 자체 구성해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나섰다. 삼진제약도 인실리코팀을 별도로 꾸리고 전문가를 고용해 자체적으로 인공지능 신약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 분야에 소요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은 국내 기업들에 넘기 힘든 진입장벽이었다”며 “이 때문에 AI 신약 개발은 미래 전략 사업으로 부상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K멜로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K멜로디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 사업이다. 제약사 등 여러 기업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훈련 시켜 관련 기술을 공유하게 된다고 한다. 프로젝트는 내년쯤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인데, 제약업계에선 AI 제약 기술이 발전하는 모멘텀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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