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말라’ 선망해 거식증까지… “인식 개선 최우선”
10·20대 증가율 두드러져… ‘프로아나’ 신드롬 확산
“미디어 영향 커… 근본적 원인접근·포괄적 방안 필요”
“큰 눈, 작은 얼굴, 마른 몸매는 우리나라에서 ‘끌리는 외모’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 요소인 셈인 거죠. ‘저렇게 말랐으면 좋겠다’라면서 부러워 할 때가 많아요. 지금도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할 때가 있죠. 연예인이 다녀갔다고 알려진 유명 병원에서 지방흡입술도 받아봤어요.” (김미연·21세·대학생)
“유튜버, 인플루언서, 아이돌 모두 말랐잖아요. 애들 사이에서는 무조건 마른 게 예쁜 거예요. 잡지나 쇼핑몰만 봐도 마른 애들 맞춤으로 나온 옷뿐이잖아요. 그래서 다이어트 한다고 점심 굶고 저녁 거르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어떤 날은 폭식하기도 하고….” (최유라·16세·중학생)
식이장애를 겪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대는 폭식증, 10대에서는 거식증 유병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마른 몸매’에 대한 선망을 일으키는 미디어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식이장애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폭식증 환자는 4115명으로 2018년 대비 32.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거식증 환자는 44.4%, 기타 식이장애 환자는 68.5% 늘어났다. 전체 식이장애 환자 10명 중 8명가량이 여성이었다.
10대와 20대 여성의 식이장애 발생 사례는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 폭식증 환자 1만5795명 중 39.7%를 20대가 차지했다. 20대 여성 폭식증 환자는 최근 5년 사이 46.9% 증가했다. 10대 이하 거식증 환자는 전체 9894명 가운데 1874명으로, 2018년 대비 97.5%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을 부르는 대표적 원인 중 하나로 ‘미디어’가 꼽힌다. 아이돌,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다양한 영상에서 마른 체형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셀러브리티’에서도 인지도 높은 셀럽의 기본 소양은 ‘체중 관리’였다.
드라마 속 한 셀럽은 40kg대의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식단을 철저히 관리한다. 오렌지 주스, 케이크를 마다하면서 “셀럽 애들 다 뼈 밖에 없는 거 몰라? 사진 찍을 때 가뜩이나 뚱뚱하게 나오는데”라며 투정을 부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튜브에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식이장애를 겪거나 극한의 다이어트 후기를 올리는 10~20대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Vlog)가 대거 검색된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서도 ‘프로아나 다이어트 자극짤’, ‘먹토 후기’, ‘뼈말라 다이어트법 공유’ 등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개선하기 위해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미디어 출연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난 2017년부터 ‘마른 모델 활동금지 법안’을 시행해 모델의 체질량지수(BMI)가 포함된 건강진단서를 2년마다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또 모델의 원본 사진을 수정할 경우 ‘수정된 사진’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최대 징역 6개월, 한화로 9600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스페인, 이스라엘, 영국 등의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제와 법규들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4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는 음식을 먹고 일부러 토하거나 비정상적 칼로리 제한 등의 섭식장애 콘텐츠를 담은 영상의 게재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유튜브 측은 “아동이나 10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섭식장애 미화·조장 콘텐츠를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며 “섭식 장애 모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콘텐츠 등은 삭제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제재가 부족한 편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영상이나 콘텐츠가 많아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홍나래 대한정신건강의학회 대외협력홍보이사는 “오래 전부터 TV나 온라인 매체는 특정 외모에 대한 대중의 선망을 부추겨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독 마른 몸매나 작은 얼굴 등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연출돼 식이장애, 성형중독 등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선진국들은 일찍이 외모지상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앞서 유럽에서 해온 규제들처럼 미디어를 제재하는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개인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현재의 문화 현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소셜 미디어 등을 접할 때 정보를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나 정부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식이·정신건강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 대외협력홍보이사는 “무엇보다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질 때 외부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매달리게 되고 외형에 더욱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신현영 의원도 “외모지상주의 여파로 왜곡된 신체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과격한 다이어트로, 또 섭식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올바른 건강정보 전달을 위한 SNS와 포털사이트 등 미디어의 순기능을 강화하고 식이장애 증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접근과 포괄적인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대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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