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도 안 보이는 50㎜ 물폭탄…한국 '극한호우' 86% 늘었다

천권필 2023. 7.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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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7일 소방, 군 병력들이 실종자 수색 및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5년간 한국의 여름철 ‘극한호우’ 빈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한호우는 시간당 50mm이상의 강수량을 보이며 홍수와 침수를 유발하는 극심한 호우를 말한다. 중앙일보가 기상청의 장수량 자료를 분석했더니, 최근 25년의 극한호우 일수가 과거 25년보다 86%가량 늘었다.


50년 사이, 극한호우 두 배로 증가


중앙일보가 기상청이 전국 관측망을 확대한 1973년 이후 여름철(5~9월) 강수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25년(1998~2022년) 동안 전국 66개 지점에서 극한호우(시간당 50㎜ 이상)가 발생한 날은 총 419일, 연평균 16.8일이었다. 과거 25년(1973~1997년)에 극한호우가 연평균 9일씩, 총 225일 발생한 것에서 86.2% 증가했다. 여름철 극한호우의 빈도가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는 의미다.
김영희 디자이너
극한호우의 증가 추세는 집중호우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시간당 30㎜ 이상의 집중호우 발생일 수는 최근 25년 동안 연평균 39.7일로 과거 25년(29.5일)보다 34.4% 늘었다. 극한호우의 증가율(86.2%)이 두 배 이상 높다.

강남 침수 계기로 ‘극한호우’ 개념 등장


지난해 8월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극한호우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17일 “지난해 여름 서울 강남에서 과거에 경험할 수 없었던 강도의 비가 내린 이후, 앞으로 이런 극한호우가 또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하고자 긴급 재난문자를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8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관측소에서 1시간에 141.5㎜의 비가 관측됐고 강남 일대가 물에 잠겼다. 다음 달 경북 포항(구룡포)에는 시간당 111㎜의 폭우가 내려 지하 주차장 침수로 7명이 숨졌다. 지난달 기상청은 기존의 호우경보 기준(3시간 90mm)을 충족하면서 시간당 50mm 이상의 극한호우가 내리면 재난문자를 직접 발송하기로 했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생태공원저수지 유실로 남부순환도로와 주변이 토사로 뒤덮였다. 중앙포토
극한호우가 내리면 보행자가 안 보이고 차량 와이퍼도 소용없을 정도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진다. 또,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퍼붓기 때문에 침수와 홍수, 산사태 등 각종 비 피해를 유발한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와 지난해 서울 강남 침수·포항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 등 큰 피해가 발생한 호우 재난 모두 해당 지역에 시간당 100㎜가 넘는 극한호우가 내렸다. 올여름에도 강한 비가 오랫동안 쏟아진 충청과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인명 피해가 집중됐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극한호우 같은 강한 비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약한 비는 반대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렇게 비의 패턴이 양극단으로 향하다 보니 재난 재해의 위험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증기 증가, 동아시아 극한호우 불러”


지난 10일 일본 후쿠오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모습. AP=연합뉴스
극한호우가 늘어나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올해 장마철 극한호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북서부에서는 홍수가 발생해 15명이 사망했고, 일본 규슈에서도 기록적인 폭우로 산사태 등이 발생하면서 7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해외에서도 극한호우(Extreme Rainfall)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스테판 울렌브루크 세계기상기구(WMO) 수문·물·빙권 국장도 “지구가 온난화되면서 점점 더 강렬하고 빈번하며, 극단적인 강우 현상이 발생해 더 심각한 홍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기상학자들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극한호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기온이 점차 오르면서 대기가 과거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비가 내릴 때마다 더 강한 강도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것 역시 여름철 수증기의 유입을 더욱 강화한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데워진 바다가 북태평양고기압을 강화시키면서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로 더 많은 수증기가 유입된다”며 “최근에도 남쪽의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북쪽의 차가운 고기압 사이로 한반도로 향하는 수증기의 길이 펼쳐지면서 강한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일어난 변화, 현실적 대응책 필요”


호우 대책은 극한호우의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상청의 극한호우 재난문자 역시 올여름에는 수도권 지역에만 시범 적용돼 정작 피해가 큰 충청 이남 지역에서 활용되지 못했다.

변 팀장은 “현재 건설된 제방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100년 빈도의 비에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돼 있다 보니 그 이상의 극한호우가 발생하면 홍수가 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완화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미 일어난 변화에 대응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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