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野, 수신료 분리-검수원복 무효화…시행령 완박법 추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정부의 ‘시행령 통치’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로 국회법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의 길을 연 방송법 시행령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다시 확대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 등 이미 시행 중인 법령까지 소급해 효력을 상실케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원내부대표로 민주당 지도부에 속해 있는 황운하 의원이 1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공동 발의 절차에 착수했다. 법안을 발의한 뒤 당 차원의 중점법안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은 국회법 제98조의 2를 바꿔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을 직접 제어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의결로 정부에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60일 이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시행령을 수정·변경 요청할 권한도 상임위에 부여했다. 본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국회법은 국회 상임위가 정부 시행령을 검토한 뒤 법률에 위반됐거나 법률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 ‘검토결과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의장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이를 송부하더라도, 이에 따를지 말지는 정부가 정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때문에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조차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KBS 수신료 분리 징수 같은 주요 정책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마땅한 대항 수단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은 각 상임위 의결로 정부의 시행령을 비토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정부와 국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법안”이라거나 “국회법 개정을 통한 ‘정부 시행령 완박(완전 박탈)’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황 의원 측은 “대법관 후보자들조차 ‘시행령 통치’의 문제를 언급했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서경환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12일 일부 시행령들에 대해 “위임입법의 부적합한 부분”이라거나 “(입법권 침해) 여지는 있겠다”고 말한 걸 거론하면서다.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도 지난 11일 방송법 시행령 관련 질의에 “위임된 범위 내에서만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경우 위헌 논란이 거셀 전망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헌법) 교수는 “법률과 시행령이 충돌했을 땐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또는 대법원 위헌명령규칙처분심사 등 독립된 사법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며 “사법부를 배제한 채 입법부가 정부 시행령을 규제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가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청하면 정부 부처의 장이 처리 결과만 상임위에 보고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지난해 국회법 개정안(조응천 의원안)도 논란이었다. 이번 황운하 의원안보다 훨씬 약한 수준이었지만,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 소지가 많다”며 비슷한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황 의원 측은 “삼권분립 원칙을 따지자면 행정부가 모법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 통치’에 나서는 것부터가 입법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정훈 전남대 로스쿨 원장도 “검수원복, 행안부 경찰국 설치, KBS수신료 분리 등 모법에 반하는 정부 시행령 통치가 일상화된 정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느리고 제한적인 사법부 판단에 의존하기보단 입법부가 스스로의 권한을 활용해 즉각 정부를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 박근혜는 유승민 ‘배신자’ 낙인 찍었다…尹도 “위헌 소지”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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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정치’에 제동을 거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과거 사례도 함께 재소환되고 있다.
민주당에 의한 국회의 위임입법 통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에도 있었다. 당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령(시행령)과 총리령, 부령(시행규칙)의 수정 요청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 제98조2항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부여한 시행령 ‘검토’ 권한을 ‘수정·변경 요청’ 권한으로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정부완박(정부 권한 완전 박탈)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개정안은 의회독재와 입법폭주를 조장하여 삼권분립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요구권을 갖는 건 위헌 소지가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입법을 총괄하는 법제처도 조 의원의 법안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제처는 법안과 관련한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질의에 “2015년 정부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 사례를 참고해달라”며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첨부한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
법제처가 제시한 사례는 2015년 5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은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원하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의 조건으로 국회법 개정안 동시 처리를 요구했다. 국회가 시행령의 수정·변경 요청권을 갖게 해 정부입법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큰 틀에서 조응천 의원의 법안과 같은 내용이었다.
당시 논란은 보수 진영의 균열을 부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행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이 법안 처리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석 244인 중 211인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게 당시 여권 핵심부의 역린을 건드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한때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전 의원을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 통과 한 달여 뒤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다.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당시 여권은 대혼란에 빠졌고, 결국 유 전 의원이 거부권 파동의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며 사건이 일단락됐다.
8년의 흐른 지금 여권 핵심부의 입장도 과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미 “위헌 소지가 많다”고 말한 만큼 황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국무회의를 통과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중론이다. 게다가 황 의원의 법안에는 ‘시행 중인 대통령령 등에 대하여도 법률위반 여부 등을 검토한다’는 소급 적용 문구가 담겨 있어 위헌 논란까지 거셀 전망이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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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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