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객관의 정치 vs 몰입의 정치
팬덤 업은 공격적 정치인 득세
토론·대화 않고 상대 악마화
정파·여야 간 내전으로 악화
팬덤에게 휘둘리지 않고 설득
할 수 있어야 포퓰리즘 방지
정치판을 보면서 느끼는 불만 중 하나는 점잖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치인보다 편향되고 공격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한 정치인들이 잘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비주류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상민 조응천 의원, 유인태 김해영 전 의원 같은 사람들이다. 반면에 정청래 의원 같은 정치인들은 주류에 속해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윤핵관 등 여권 실세들이 내부의 문제점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하거나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모색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김기현 대표도 대표가 된 뒤 더욱 말이 거칠어졌다. 반면에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을 비롯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중도층이 귀 기울일만한 말을 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비주류로 밀려나 있다. 노무현정부에서 일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객관의 정치’와 ‘몰입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객관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 비주류, 몰입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 주류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정치인들이 주류가 되기 위해 몰입의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몰입을 한다. 바로 정치 팬덤들이다. 정당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돼 당의 역사와 정책에 대해 잘 모르면서 당의 주인 행세를 한다. 합리적 토론이나 대화를 하지 않고 다른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을 문자폭탄 같은 것으로 공격한다. 요즘 아이돌 가수 팬덤들조차 다른 가수나 팬덤을 향한 비난을 금기시하고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언행을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인들은 팬덤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언행을 하고 팬덤들은 이에 열광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다른 정치인 팬덤들의 지지를 빌리려는 시도도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를 공격하고 이재명 대표를 감싼 것이 대표적인 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한 문 전 대통령, 대장동 의혹을 제기한 이 전 대표에게 있다는 친명 강성 지지자들의 정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추 전 장관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까지 공격하는 바람에 양아치 정치라는 비난도 들었지만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개딸을 비롯한 친명 극렬 지지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언행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 전 장관뿐만 아니라 송영길 전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한가하게 책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내에서 개딸들은 수가 많지 않지만 조직적이고 극성스러운 행태로 수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의 중학교 시절 거지파로 불렸던 패거리는 구성원 개개인은 공부도 싸움도 못하는 애들이었지만 몰려 다니면서 애들을 위협하거나 때렸다. 거지파에게 찍히면 제법 공부나 싸움을 잘하는 애들도 한 명씩 집단 폭행을 당하곤 했다.
강성 지지층은 당내 다른 목소리를 결코 용인하지 않고 좌표를 찍어 공격한다. 중도층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정서나 여론도 무시한다. 여야가 강성 지지층에 기대 정치를 하다 보면 여야 관계도 대화와 타협이 없는 정치적 내전으로 치닫는다. 국민이 피해를 보든 말든 상대를 악마화하고 공격하다 보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백지화되고 민생 법안들은 처리되지 않는다. 정치에서 적극 지지층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노무현의 노사모, 박근혜의 박사모, 문재인의 문빠는 물론이고 3김 시대에도 지역주의 기반의 열렬 지지층이 있었다. 현실 정치에서 팬덤은 없을 수 없다. 팬덤의 황홀한 지지를 경험한 정치인이 팬덤을 포기하는 것은 마약을 끊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가 가능토록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팬덤들의 주장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의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각 정당 체제 속으로 흡수돼야 한다”고 말했다. 팬덤들의 주장이 날것 그대로 관철되고, 정치인이 팬덤을 추종하거나 이들의 지지에 얹혀 가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포퓰리즘이다. 중도층을 포함한 일반 국민의 정서와 괴리된 팬덤은 응원하는 팀이 지면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일 뿐이다. 요즘 아이돌 팬들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축제가 끝난 뒤 쓰레기를 되가져 간다. 정치 팬덤이 아이돌 팬덤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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