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폴란드 민간협의체 필요하다
14년 만에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 폴란드는 1989년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상호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양국은 2004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거쳐 2013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이후 2022년 방위산업과 원자력발전소 등 전략적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왔다. 양국 관계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폴란드를 포함한 중동부 유럽에 관한 국내에서의 논의는 서유럽 주요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우리에게 폴란드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먼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가장 인접한 나라로 전후 재건의 중심지이며 중동부 유럽 지역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이다. 3776만명을 넘는 폴란드 인구는 약 1000만명 수준인 체코나 헝가리와 비교해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경제 규모는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3개국을 합친 것보다 크다. 지리적으로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틱 3국, 체코, 슬로바키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물류 중심지로, 서유럽에서 수입된 완제품 및 원부자재가 이들 중동부 유럽 국가로 재수출되고 있다.
이미 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에 진출해 에너지, 방산, 인프라 등의 산업 부문에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각종 부문에서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1993년 대우전자의 폴란드 진출 이후 2000년대 들어 LG전자, 삼성전자, 만도 등이 전기가전과 자동차 생산 부품 분야에 진출했다. 2016년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고 현대엔지니어링이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대형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지난해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약 8조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총 20조원 이상의 방산 수출 기본 계약이 성사된 바 있다.
교역 면에서도 우리는 1989년 이후 폴란드와의 교역에서 꾸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對)폴란드 수출 규모가 수입 규모에 비해 6~8배 크다. 양국 간 교역은 2022년 기준 9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편 2021년 폴란드에 대한 투자는 유럽연합(EU) 다음으로 한국(9억6000만 달러), 미국(4억8000만 달러), 중국(2억8000만 달러) 순이었다. 협력 분야 확대는 신규 수출시장의 확보와 핵심 첨단 산업의 공급망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EU 시장 진출의 교두보이자 생산기지의 거점으로서 나아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협력 파트너로서 폴란드와의 관계 강화는 필수적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EU 국가들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안보 분야에서도 양국 간 공조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관계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대서양 지역의 연결이라는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폴란드는 군사·경제·과학기술을 아우르는 복합 안보 영역의 한 축이자 방산의 유럽 교두보로서 우리와 EU 모두에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우리에게 폴란드는 주요 경제안보 협력을 위한 전략 지역이자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중동부 유럽 지역의 핵심 파트너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는 물론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의 지역협의체인 비세그라드그룹과의 협력 관계를 논의할 민간 차원의 상설 협의체가 존재하지 않아 유감이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을 계기로 정부는 물론 재계와 학계가 양국 관계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서유럽 국가 중심의 대EU 관계를 균형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연호 연세대 교수·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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