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뜨락에서] 끊어지지 않는 밑줄 하나
눈이 먼저 웃는 아이가 있었다.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당기며 웅크린 듯하더니 선잠 깬 눈으로 부모의 하루를 본다. 작은 부엌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구수한 밥 냄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이른 새벽 밥 냄새를 맡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 시간이면 초승달이 보였다. 서두르는 하루를 살았지만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부모의 모습에는 오늘의 가난이 함께 들어왔다. 어느 날인가 그 가난은 쌓이고 쌓여 내일이면 사라질 가난이라 하지 않았다. 한결같았던 가난이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며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다녀야 했던 아이였다. 어렵게 구한 책가방은 하필 빨간색이었고 공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빨간색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아이를 보며 친구들은 수군거리거나 낄낄거렸다. <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 중>
지난해 11월 출간한 에세이에 쓴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책이 출간된 후 남편은 이 꼭지를 정말 많이 읽었다. 기억을 더듬다가 벗겨진 세월의 껍질을 떨쳐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았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남편 이야기 속엔 가난을 등에 업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아픔이 꽤 많다.
그 먼 어느 날의 이야기라 기억의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에 열등감으로 회피하고 싶었던 일들을 토해내는 날이면, 부모에게 들었던 말의 기억들로 인해 가녀린 초승달은 양 칼날이 박혀 있는 무기로 변해 버렸다. 내면의 아이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슬퍼했다. 그 시절 가난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가난은 궁핍한 상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갈망에 잠식된 상태라고도 하던데. 부모의 가난은 즐겁게 웃을 수도 없는 부족함이었고 궁핍이며 불행한 이유이기만 했다.
형의 중학생 가방을 들고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아이의 마음은 부모의 갈망 안에 갇혀 버렸다.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부모는 자신들 삶의 곤함만 생각했기에 명령과 복종 그것도 아니면 형편 아래 아이의 메시지를 잠식시켜 버렸다. 내면이 불안정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양육은 부모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자녀가 수용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함을 알았다. 부모가 사랑으로 존중하며 기대와 함께 요구하면 자녀는 부모의 지지 속에 자부심 있는 아이로 자라며 많은 것을 수용했다. 물론 실수도 많았다. 남편과 나의 이기심이 엄격한 사랑으로 둔갑해 아이를 향해 요구만 할 때도 많았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사랑에는 이기심 따위가 없다는 것을 신앙의 힘으로 배우며 시대가 달라진 새로운 가난 속에서 웃을 수 있었다. 따뜻한 정서를 물려받지 못한 남편이었다. 성장하면서 다소 거칠고 메마른 삶을 살면서 방황했다. 그랬는데도 하나님 품은 벗어나지 못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햇살과 바람으로 베었던 마음을 치유하셨던 하나님이, 끊어지지 않는 밑줄을 두툼하게 그으시며 함께 걸어오고 계셨다. 굴곡 많은 인생길에 하나님께 밑줄 그어진 사람, 남편이었다.
며칠 전 남편이 세면대에서 소리 없이 운 적이 있다. 들썩거리는 어깨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물로 씻어 내리며 억누르고 있었다. 사랑이 사람을 살아가게끔 하고 제각기 겪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뤄진 것이 삶일 텐데 그 어느 시점의 자신을 만나 울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울음이었다. 남편은 우연히 1980년대 삶을 그린 드라마를 보게 됐다. 아빠가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준 전자 손목시계를 받고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운동회 날 체육복을 입지 못했고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던 아이. 펑퍼짐하고 허름한 옷을 물려 입었던 아이.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전자 손목시계를 받으며 무섭도록 단호한 아버지의 말을 들었던 아이. “형은 집안을 일으켜야 하니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고 여동생은 초등학생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너는 중학교를 갈 수 없다.”
그 아이일까 싶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손목시계를 쥐어 잡고 서럽게 울었던 아이 말이다.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무화과나무 아래서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아이였다. ‘무화과나무와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은 아이의 말을 담은 증인이 되었고, 하나님은 웃으셨다.’ 그날처럼…. 하나님은 또 웃으셨다.
“나를 샬롬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눈물의 고백이었다.
장진희 사모(그이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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