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오세훈의 길, 원희룡의 길
'386세대' 3명 수혈…야당 "첫 판정승".
23년 전인 2000년 1월 14일자 중앙일보 5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사진 속에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가 미소를 띠고 있다. 왼쪽의 두 남성과 오른쪽의 여성이 파이팅의 뜻을 담아 이 총재와 손을 모았다. 기사는 "한나라당이 13일 '386세대' 세 사람을 영입했다. TV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 였던 오세훈(39) 변호사와 대입 학력고사·사법고시 수석합격자인 원희룡(36) 변호사, 미스코리아 서울 진 출신의 경제학 박사 한승민(39) 동덕여대 강사가 그들"로 시작됐다. 그해 총선을 앞두고 오·원 변호사를 둘러싼 여야의 영입전이 특히 치열했으나 두 사람이 결국 야당을 택해 한나라당이 고무됐다는 내용이다. 당시 여당 대변인(김민석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둘 다 (여당에) 오기로 해놓고 속였다. 연민을 느낀다"는 분노의 독설을 퍼부었다. 둘을 향한 영입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가 실감 난다.
일조권 등 환경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TV 스타 변호사(오세훈 현 서울시장), 학생운동권과 검사를 거친 '수석 인생'의 주인공(원희룡 현 국토교통부 장관,이상 가나다순).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한국 정치에 데뷔했다.
■
「 23년 전 한날한시에 정치 입문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 관계
현재의 위치와 역할은 대조적
」
오 시장의 정치는 화려했지만 그늘이 길고 깊었다. 16대 국회에서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 관계법 개정을 주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격적인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 2년 뒤인 2006년 민선 최연소(45세)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와 시장직 사퇴, 잇따른 총선 패배 등 10년간의 혹독한 시련기를 거쳤다.
원 장관은 덜 강렬했지만 꾸준했다. 그 유명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한 축으로 오랜 세월 보수 소장파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40세 때 당 대표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43세 때 대선 경선에선 이명박-박근혜에 이어 3위를 했다. 사무총장 등 당 요직과 제주도지사 재선을 거쳐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빅4'로 결선에 진출했다.
2009년 말~2010년 초 두 사람은 한 차례 격돌했다. 당시 서울시장직에 도전장을 내민 원 장관은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한다. 미화부장 같다"며 현직인 오 시장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 시장이 도전을 뿌리치고 수성에 성공했다. 13년 만인 지난 4월엔 부동산 실거래 정보 제공과 김포골드라인 과밀 해소 문제를 놓고 얼굴을 붉혔다가 화해하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경쟁자로, 때로는 협력자로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오랫동안 지켜봐온 두 사람은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 사석의 원 장관은 적극적이고 호탕하다. 자신감에 차 있고, 술자리도 왁자지껄하다. 오 시장은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내키지 않는 말은 잘 못한다. 부드럽지만 고집과 심지가 확실하다.
현재의 위치나 정치적 색깔에선 차이가 좀 더 분명해진다. 원 장관은 현 정부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이다. 대장동에 이어 최근 정치권을 강타한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일타강사로 여야 전선의 선봉에 서 있다. "집토끼 우선"을 추구하는 현 여권 핵심부와 진영적 일체감이 강하다. 화물연대 파업 등 노조와의 대치 이슈에서도 존재감이 짙다. 여당 지지층에서 환호를 받는다.
반면에 광역단체장인 오 시장은 구조적으로 정권과의 거리가 원 장관만큼 가깝기는 어렵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후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협력자의 위치다.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선후보임에도 그가 공을 들이는 시정 철학 '약자와의 동행' 처럼 그의 언어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층보다 중도층에서 더 소구력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치에 정답은 없다. 다이내믹한 한국 정치 풍토에선 어떤 바람을 누가 탈지 예단하기 어렵다. 대비되는 24년 차 정치 동기생 앞에 펼쳐질 미래가 흥미진진하다.
서승욱 정치디렉터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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