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왈츠의 아버지와 왈츠의 황제
음악사에서 유일하게 부자가 똑같은 명성을 누린 사람들이 있다. 나란히 ‘왈츠의 아버지’와 ‘왈츠의 황제’로 불렸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피아노 앞에서 왈츠를 작곡하고 있는데 좀처럼 멜로디가 풀려나가질 않았다. 그래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놀던 어린 아들이 “아버지, 그다음에는 이런 멜로디가 어울릴 것 같아요”라고 하며 피아노로 멜로디를 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재능을 보인 아들은 이후 음악가로 성장해 자기 자신의 왈츠를 작곡했다.
그런데 비록 부자지간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빈의 유명 음식점 돈마이어에 ‘오늘 저녁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지휘로 연주회가 열립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은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이것을 떼도록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다음 날 신문에서는 ‘이제 빈은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음악가를 갖게 되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두 왈츠 왕의 반목은 일생 계속되었다. 정치적 입장도 서로 달랐다. 아버지는 보수파로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진압한 오스트리아의 라데츠키 장군을 찬양하는 행진곡을 작곡한 반면,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개혁파로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찬양하는 행진곡을 작곡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해마다 열리는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이들 부자의 작품이 ‘사이좋게’ 연주된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두 사람의 음악에는 별 차이가 없다. 똑같이 경쾌하고 달콤하다. 객석에 앉아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손뼉을 치는 관객 중에 “이건 반혁명주의자를 위한 음악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방광암 치료하러 오지마라" 담배 냄새 맡은 명의 일침 | 중앙일보
- 발목까지 물차는 수십억 새 아파트…지하주차장 본 교수 혀찼다 | 중앙일보
- [단독] 추경 다 깎인 TBS…강석·박철, 출연료 없이 방송한다 | 중앙일보
- 인도적 지원이나 '살상무기' 못잖다…尹 묘수, 우크라 지뢰제거 | 중앙일보
- 성남시가 맺어준 39쌍 커플…세금 들여 중매사업, 어떠신가요 | 중앙일보
- "쓰나미급 물살, 탈출 불가"…극한호우 늘어난 한국 '지하 공포증' | 중앙일보
- "옷 벗고 돌아다니는 여자 있다"…집에 가보니 친언니 시신, 무슨 일 | 중앙일보
- '혼수상태설' 주윤발, 팬들 웃겼다…무대 올라 마이크 잡고 농담 | 중앙일보
- 돌싱남 '재혼 조건' 1위는 외모…여성은 돈·외모 아닌 '이것' | 중앙일보
- 대학병원 여의사 매운 주먹…3년 만에 프로복싱 한국 챔피언 등극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