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경쟁력 키운 우리 기업들…‘엔저 공세’ 맷집 세졌다
‘엔저’가 한국 수출에 끼치는 영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는 엔저(低) 현상은 일본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 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그간 상식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역대급 엔저’가 수출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 간 수출 구조가 달라져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14.02원을 기록했다. 직전 거래일(지난 14일) 기준가(917.62원)보다 3.6원 떨어졌다. 원·엔 재정환율은 약 8년 만에 한때 100엔당 800원대를 기록했다가 최근 다소 높아졌지만, 지난 4월 말까지 100엔당 1000원을 넘나들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기록적인 엔저 현상은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에 엎친 데 덮친 꼴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물건을 세계 시장에 판다고 할 때 엔저를 등에 업고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어서다. 한국의 전년 대비 월간 수출액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9개월째 뒷걸음질이다. 이달 1~10일 수출액도 1년 전보다 14.8% 줄었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시장은 엔저 여파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동원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부장은 최근 국제수지 관련 브리핑에서 “엔저 현상이 상품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근거로 한국과 일본 수출 경합도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줄었다는 점을 꼽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한·일 간 수출 경합도는 2015년 0.487에서 2021년 0.458로 낮아졌다. 이 수치는 한·일 간 수출 구조 유사성 정도를 보여주며,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심하다는 뜻이다. 업종별로도 같은 기간 반도체, 자동차 및 부품, 철강, 석유 등 대다수 업종에서의 경합도가 낮아졌다. 무협은 “한국과 일본의 수출 구조가 차별화되고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제고된 데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선박의 양국 간 수출 경합도는 2015년 대비 2021년에 올랐다.
엔저 상황이 연내에 저물 수 있다는 전망도 수출 타격 우려를 덜어 주고 있다. 일본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홀로 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5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3.2%를 기록하는 등 고물가가 이어지며 긴축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동원 한은 부장은 “엔저가 수출에 영향을 주기 위해선 오래 지속해야 하는데, 최근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책 목표(2%)를 상회하고 있어 하반기엔 엔화가치 절상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일본은행도 통화 정책 정상화(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며 “올 하반기에 100엔당 원화값이 900원대 후반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이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엔저 기조를 향후에도 길게 끌고 갈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철강, 석유 등 공급자 간 제품의 질적 차이가 크지 않은 상품을 중심으로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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