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따라 귀농했는데, 종일 찾아도 안 보여" 폐허 못 떠나는 사연
[조정훈 backmin15@hanmail.net]
▲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의 한 주택이 무너져 내렸다. |
ⓒ 조정훈 |
"마당에 소나무가 없었으면 죽었어요. 소나무를 붙들고 있다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니까 주민들이 나와서 구해줬어요. 마당에도 토사가 사람 허리만큼 쌓였어요.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고 토사가 쓸려 내려온 것은 처음 봤어요."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만난 주민 김종태(70대)씨가 자신의 집 마당을 가리키며 산사태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마을에서 두 명이 실종됐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해 안타깝다며 그저 하늘만 원망했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경북은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도 17명에 달했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예천으로, 9명의 사망자와 아직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 모두 이곳 주민이다.
"대통령도 '처음 본다' 말할 정도로 처참"
17일 찾은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와 벌방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집은 무너져 떠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지붕이 땅에 닿아 있었고, 트럭과 승용차 등 차량은 뒤집어진 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찾은 벌방리에서는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소방당국과 군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수색하고 있지만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벌방리 이장 박우락(63)씨는 "마을 뒤에 있는 주마산에서 산사태가 나 집이 무너지고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며 "대통령도 오전에 이곳을 보시고 '이렇게 큰 돌이 쓸려내려와 마을을 초토화시킨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처참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어떤 약속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뭘 해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지만 '재난지역 선포 수준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다'면서 전반적인 해결책을 경북도지사 등에게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의 도로가 막히자 17일 포클레인으로 정비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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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의 한 집안에 토사가 가득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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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레인으로 실종자를 수색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던 안춘모(71)씨는 "나를 따라 귀농했던 친구의 부인이 집이 무너지면서 휩쓸려 실종됐다"며 "안타까워 하루 종일 찾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과수원이 피해를 입었지만 더 큰 피해를 입은 이웃집 쌓인 토사를 퍼내고 있던 남준섭(60대)씨는 "우리도 피해를 입었지만 나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더 많다"면서 "안타까워서 손이라도 더 보태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남씨는 "오염물질이 하나도 없는 청정 마을인 우리 동네가 왜 이렇게 처참하게 변했는지 전혀 상상이 안 간다"며 "대통령도 다녀가고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믿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쉬지 못하는 소방대원들... "꼭 찾아드리고 싶다"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한 감천면 진평리도 마을 앞 도랑에 물이 넘치면서 주택이 무너지고 차량은 뒤집어졌다. 마을 앞 사과밭과 과수원도 1m 이상 쓸려 내려온 토사로 뒤덮이고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집에 가득 찬 물을 퍼내기 위해 양수기를 준비하던 이득호(75)씨는 "15일 새벽 2시쯤부터 마을 앞 도랑에 물이 넘쳤다"며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지만 이렇게 많은 비가 오고 처참한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손으로 찌그러진 차량을 가리키며 "저 차량도 한 50m 떠내려왔고 저 창고도 떠내려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서 "이 앞이 물바다가 됐는데 그때 심정은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뒤집혀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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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에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나오자 소방당국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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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를 찾기 위해 소방당국과 군은 이곳 계곡을 뒤졌지만 이날 오후까지 찾지 못했다. 한 소방대원은 "힘들지만 시신이라도 꼭 찾아드리고 싶다"며 계곡 인근의 휩쓸린 나무를 베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길이 끊기고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아서 중장비의 진입도 어려운 곳이 많아 토사를 걷어내는 것도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소방대원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수색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랜만에 맑았던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전날까지 19명의 사망자는 더 늘지 않았으나 실종자 8명의 생사는 이날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부상자도 17명에서 더 늘지는 않았다.
▲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한 주택. 사라진 주택에 흔적만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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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 계곡에서 50사단 장병들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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