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빌고 싶다" 예천 또 장대비 …속타는 실종자 가족들
“하늘을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우째요. 지금 작업이 한창인데.”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이모(72)씨는 17일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며 원망하듯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예천 벌방리 산사태로 발생한 실종자 윤모(62)씨의 가족이다. 수원에서 거주하는 그는 윤씨의 실종 소식을 접한 직후 벌방리에 내려와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족이 하나라도 있어야 좀 더 잘 찾아주고 할까 봐서….”라고 했다.
오후 벌방리에는 장대비가 왔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며 실종자 가족의 가슴을 애타게 했다. 산사태로 약해진 지반에서 실종자 수색, 피해 복구를 진행하고 있어 작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18일까지 경북 지역에 100~250mm, 많게는 300mm 이상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했다.
이날 벌방리에선 100명 이상의 군‧경‧소방이 출동해 피해 복구 작업을 펼쳤다. 대원들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고, 밟으면 발이 푹푹 들어가는 위험한 지반 위에서 연신 잔해를 치웠다. 현장에서 만난 소방 관계자는 “우리까지 여기서 꽁무니를 빼면 실종자 가족은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하겠나. 위험해도 할 수가 없다. 최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고된 구조 활동에 “참 힘들기는 힘드네요”라고 말했다.
벌봉리 주민들도 하늘이 원망스럽긴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피해를 본 이웃의 집을 정리하던 이모(65)씨는 “7월 장마도 아직이고, 8월 장마, 9월 태풍까지 오면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다. 신을 안 믿지만, 하늘에 기도하고 있다”며 “이 집들 다 젊은 시절에 힘들게 돈 벌어서 지은 건데 저 커다란 바위를 맞았으니 헐어야 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백석리 마을 회관에서도 “우야노. 비 더 온단다”라는 탄식과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난 주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이곳에서만 사망자 5명, 실종자 1명이 나왔다. 산사태 당시 토사물을 헤치고 나와 가까스로 생존한 심옥선(82)씨는 “나야 이제 집도 절도 없는 몸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큰일”이라며 "예천 다른 지역에 사는 아들도 비 피해를 볼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흘째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김익겸(90)씨는 “비가 또 온다니 무서워서 집이 있어도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실종자 시신을 찾기도 어려워질 것 같다”고 했다.
윤정민ㆍ김홍범ㆍ이영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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