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무색한 국회…헌법 어긋난 법률 37건 상임위서 방치

김정재 2023. 7. 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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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이 국회에서 개정되지 못한 채 쌓여가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제75주년 제헌절'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제헌절인 17일 중앙일보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을 전수조사한 결과, 위헌 법률 22건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률 20건 등 총 42건이 개정되지 못했고, 이 중 37건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헌 법률은 헌재 결정과 동시에 무효가 되고, 헌법불합치 결정 법률은 헌재가 정한 기한까지만 효력이 유지된다. “법의 흠결을 치유해야 할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내팽개쳤다”(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20건 중 3건은 개정 시한을 넘겼다. 국민의힘이 지난 5월 야간옥외집회 금지와 관련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원래 개정시한은 2010년 6월까지였다. 헌재가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낙태죄 처벌조항(형법)은 2020년 12월이 개정시한이었으나, 여전히 대체입법 논의가 지지부진해 불법 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결정은 국회에서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하라는 취지”라며 “그런데도 시한을 넘겨 조항 자체가 무효가 되니 건설 노조 노숙집회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개정시한이 남아있는 나머지 법안들도 논의에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상임위 회의록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 규정(국가공무원법·헌법불합치) ▶아동학대 범죄자의 어린이집 취업제한 규정(영유아보육법·위헌) 등 28건은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에서 단 1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5건은 개정안이 마련조차 안 됐고, 23건은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각 상임위에 회부만 시켰을 뿐이다.

윤재옥(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촬영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차례 이상 논의된 9개의 법안도 21대 국회 내 개정을 장담할 수 없다. 금융사 직원에게 다른 사람의 계좌번호 등을 물어보지 못하게 한 금융실명법(위헌)의 경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한 의원이 “급한 법은 아니지요?”라며 마무리한 뒤, 이후 2차례 소위에서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를 비공개로 하는 국회법(위헌)은 “하여튼 조금 더 논의해보자”라는 발언을 끝으로, 보호관찰 처분자에 거주지 변동 신고 의무를 무기한 강제한 보안관찰법(헌법불합치)은 “다음에 결정하자”는 제안 이후로 수개월째 방치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법제실은 지난해 11월부터 6차례나 ‘헌재 결정과 개정대상 법 현황’ 보고서를 발간해 상임위에 배포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첫 보고서에서 40건이던 개정 대상 법안 숫자만 42건으로 늘어났다. 한 국회 관계자는 “조금씩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올해 3월에만 8건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며 “국회에선 논의가 급물살을 타지 않으면 개정안이 오랫동안 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하는 남인순 정개특위 위원장. 연합뉴스


다만 국회의원 선거운동 방식을 규정하는 공직선거법은 이례적으로 논의가 활발하다. 선거운동 제약을 완화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 5건은 최다 4회까지 논의되며 지난 13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김형준 배재대학교 석좌교수는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며, 본인들의 이해와 관련된 것들만 다루는 점이 국회가 불신받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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