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론을박 손석구의 '진짜 연기론'이 남긴 뒷맛

하성태 2023. 7.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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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그의 도전은 어떻게 끝날까

[하성태 기자]

2000년대 중후반, 2~3년에 걸쳐 한 배우를 연거푸 인터뷰했더랬다. 이 배우는 한 유명 극단에서만 12년가량 몸담았다. 스크린엔 간간이 단역으로 얼굴을 비췄었다. 그러다 2004년 인상적인 깡패 캐릭터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주조연을 오가며 인지도를 쌓았다. 당시 그 배우가 극단 시절 선생님께 배운 연극 연기의 지론 중 하나는 이거였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리면서 데생을 몇 천 장을 했다."

피카소가 데생을 더해가며 대작을 완성했다. 연극 연기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가로 인정받은 그 연출가는 극단 소속 배우들에게 매번 매회 무대마다 다른 연기를 요구했단다. 그렇게 대사를, 호흡을 바꿔갔다고 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고 또 관객에게 반응이 오는 부분마저도 고치고 또 바꿔야 한다는 게 그 연출가의 지론이었다. 무대마다 살아있는 연기, 현장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론을 체득하고 무대마다 준비하고 변주해야 하는 배우들은 죽을 맛이었겠지. 물론 그 자체가 연극 연기가 주는 감동이자 관객들 반응을 현장에서 흡수하는 배우들에겐 희열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시절이었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가, 그리고 후배 황정민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열어가던 그 시기, 수많은 극단 출신 배우들이 스크린으로 수혈됐다. TV 공채 출신 연기자들이나 CF 출신 배우들의 지분이 점쳐 줄어드는 반면 무대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극단 출신 배우들이 대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입성했다. 그들의 강점은 단단한 발성으로 무장된 탄탄한 기본기였다.

'믿고 보는' 배우들이 늘어갔고, 한국영화와 드라마 전체가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영화 속 배우들은 연극적인 발성을 급격히 줄여나갔다. 대신 일상의 언어를 자연스레 전달하는 연기가 각광 받았다.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에 있어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건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박찬욱, 봉준호의 영화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매체 연기와 배우라는 존재

'배우는 선택받는 존재잖아요.'

이들을 만나보면 특히 강조하던 배우의 특성이 바로 '선택받는 존재'에 관한 자각이었다. 플랫폼이 다양해진 지금은 그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겸양'일 순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배우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에 관한 통찰이라 할 수 있었다. 감독으로부터, 제작자로부터,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한 작품을, 또 다음 작품을 이어갈 수 있는 배우로서의 숙명. 이제는 배우들이 쉬이 털어놓곤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고.

다른 하나가 바로 매체 연기의 어려움이었다. 캐릭터 나이를 넘나든다. 쩌렁쩌렁한 발성은 기본이다.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하는 주연들은 필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암기력을 발휘한다. 1~2인극을 떠올려 보시라. 때때로 1인 다역을 맡아 공연 시간 동안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기도 한다. 맞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했다. 현장성의 미학이기도 하다.

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그래서일 터다. 무대와 달리 영화는, 드라마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한 컷 한 컷을 현장에서 쌓아올려야 비로소 작품 한 편이, 드라마 한 회가 완성된다. 동선을 지켜가면서도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눈을 맞춰야 한다. 상대 배우의 연기를, 현장 세팅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환경적 요인만 놓고 보면 연기의 접근법 자체가 다른 것이다.

배우들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매체를 달리하게 되는 초창기, 그 접근법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들 털어 놓는 건 그래서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과 무대 자체의 특성이 천양지차다. 스태프들은 물론이요 촬영현장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환경의 차이를 수긍하게 될 것이다.

최근 손석구의 '가짜 연기' 발언 논란을 지켜보며 지금은 넷플릭스 드라마와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그 유명 극단 출신 배우의 과거 게르니카 발언이 떠올랐다. 그리고선 되짚게 됐다. 손석구의 논쟁적 발언에 내포된 '진짜 연기'란 무엇인가. 

대선배의 충고 
 
▲ 연극 '나무 위의 군대'의 배우 손석구 배우 손석구가 6월 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는데 그럼 마이크를 붙여주던지, 왜 그렇게 가짜 연기를 시키나 싶더라고요."

지난 6월 27일 열린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서 손석구의 발언이다. 그러면서 원래 무대에만 서고 싶었다는 그는 "서른 초반 때 마지막으로 연극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고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다시 무대에 도전할 때 으레 나오는 질문, 그러니까 다른 장르 간 연기를 할 때 차이점에 대해 손석구는 꽤나 날선 답변을 내놨더랬다.

일종의 실험일 수 있을까. 그의 견해를 풀어 보면 이랬다. 두 연기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다. 그렇지만 무대 연기가 영화나 드라마 연기와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고, 후자의 연기를 전자에 도입해도 괜찮은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이크를 차고 매체 연기와 똑같은 접근 방식으로 무대에 서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일정 정도 리얼리티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연극적 설정에 대한 지적을 '가짜 연기'란 도발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분명 도전이라고 하면 도전이요, 일종의 파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손석구는 평소 인터뷰 등에서 꽤나 솔직한 화법을 구사해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연기자에 대한 꿈을 꿔왔거나 연극영화과 출신처럼 학업으로 연기를 배운 경우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강력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손석구의 이러한 접근법을 신선하게 여길 관객들도 적지 않을 수 있으리라. 신인시절 그는 사비를 들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나무 위의 군대> 무대에 섰다고도 했다. 손석구는 2011년 연극 <오이디푸스>로 데뷔했고, 2014년 <사랑이 불탄다> 이후 매체 연기를 거듭해왔다. 정극 무대 위에 마이크를 도입한 그의 시도 자체가 일종의 실험이자 도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이나 선배인 어느 노배우의 생각은 달랐던 듯싶다. 손석구의 가짜 연기 발언을 오만이라 평했다. 손석구의 지난달 말 발언이 뒤늦게 회자된 것도 바로 이 선배 배우의 일침 때문이었다. 그 선배는 바로 1980년대 데뷔해 동아연극상,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하고 매체 연기도 겸하고 있으며 최근 신구와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 중인 배우 남명렬이었다.

"진심으로, 진짜 연기를 속삭였는데도 350석 관객에게 들리게 하는 연기를 고민해야 할 거다. 연극할 때 그 고민을 안 했다면 연극만 하려 했다는 말을 거두어들이길. '해보니 나는 매체 연기가 잘 맞았어요'라고 해라(...). 속삭여도 350석 정도는 소리로 채우는 배우는 여럿 있다. 모든 연기는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일진대 진짜 연기가 무엇이라 규정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남명렬의 지론은 이랬다. 그는 지난 14일 본인 페이스북에 손석구 발언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하하하, 그저 웃는다. 그 오만함이란"이라며 "부자가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덧붙인다"고 쓴 뒤 위와 같은 부연을 적었다.

오랫동안 무대를 지켰던 노장 배우가 후배에게 전하는 충고인 동시에 대중들도 납득 가능한 이해 쉬운 연기론의 일환이었다. 논란이 되자 남명렬은 게시물을 삭제했다. 그럼에도 그의 문제제기는 무게감 있는 시사점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수용자들인 관객이나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말이다.
 
그 딕션 혹은 발성에 관하여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큰 호응을 받는 의외의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자막 서비스다. 한국영화를 볼 때 종종 들리지 않거나 헷갈리는 배우의 대사로 인해 짜증을 냈던 시청자들은 격하게 환호하며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자막 서비스를 즐기는 중이다.

딕션(diction) 혹은 발성(發聲). 그렇다. 각종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 상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특정 작품, 특정 배우의 발성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게시되곤 한다. 개별 배우들의 발성을 넘어 촬영 환경이나 후반 작업의 미진함을 개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일부 배우들의 미진한 딕션 혹은 발성은 작품의 평가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한다. 때로는 그 배우를 택한 감독이나 미진한 발성을 보완하지 못한 촬영 환경이나 기술적 결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은 이미 남명렬 배우가 한 마디로 규정했다. 작품 속 모든 연기는 허구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그 캐릭터는 허구가 맞다. 다만 배우는 그 허구적 인물을 현존하는 현재적 캐릭터로 완성하기 위해 숨을 불어 넣는다.

그 숨엔 발성이 중시되는 대사도, 스크린에서 극대화되는 표정도, 액션에서 잘 살아나는 동적인 연기 모두 포함된다. 매체나 장르에 따라 혹은 장면에 따라 이들 요소 중 강조되는 측면이 존재하는 셈이다.

평자나 관객의 호불호에 따라 '나쁜 연기'를 규정할 수 있을지언정 매체적인 특성을 두고 '가짜 연기'라 운운한 것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남명렬 배우의 친절한(?) 설명처럼, 그것이 특히나 발성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완성하기까지 몇 천 장의 데생을 그렸듯 배우들의 발성 또한 숱한 노력과 시간을 들인 끝에 완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손석구가 연기한 <나의 해방일지> 속 구씨는 초반부 말을 잃은 인물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구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캐릭터의 고독이나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방식을 총동원할 수 있는 매체다. 그리고 손석구는 그 구씨를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구씨가 마음을 열며 짤막한 대사를 나지막이 읊조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구씨를 무대에서 연기하게 된다면 손석구조차 분명 접근법이 달라질 것이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과 달리 바로 앞에서 대면하는 수십 명 수백 명 관객에게 공감을 주기 위해 본인만의 강조점을 포착하고 이를 온몸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기자 손석구 본인 또한 이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관객들은 그 연기를 보기 위해 티켓 값을 지불한다. 가짜 연기를 보기 위해 티켓 값을 지불하는 이들은 없다. 오는 8월 12일까지 공연하는 <나무 위의 군대>를 관람한, 관람할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터. 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손석구의 진짜 연기를 위한 도전이 나름의 결실을 맺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진짜 연기와 가짜 연기를 가르는 도발을 감행한 손석구의 진심을 제대로 평할 이들 또한 우선적으로 그의 발성을 접할 그 관객들일 테니까.

손석구의 도발이 어불성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갑론을박인 주제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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