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황 누린 정유업계, 1년 만에 위기…“앞으로도 안갯속”
정유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실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업계는 하반기 반등을 기대하지만 이 역시 안갯속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것과 비교하면 1년도 안 돼 ‘다른 세상’을 만난 것이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올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74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3292억원)과 비교해 88% 급감할 전망이다. 에쓰오일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역시 243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220억원) 대비 86% 줄었다.
영업익, 작년 대비 약 90% 감소 전망
업계는 비상장사인 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부문별로 화학·윤활유에선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지만, 본업인 정유에서 부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유가 하락으로 재고자산 평가손실 규모가 커지고, 석유 제품 수요 감소로 정제마진이 급락하면서다. 예컨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지난해 2분기 배럴당 100~120달러를 유지했지만 최근엔 70~8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정제마진은 정유사 수익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휘발유·경유·등유 같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를 포함한 원료비를 뺀 마진을 가리킨다. 업계에서는 보통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5월부터 4달러대에 그치고 있다.〈그래픽 참조〉4월 28일에는 1달러 아래(0.8달러)로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6월 21일 30달러까지 치솟았던 것에 비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정제마진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는 중국 리오프닝 효과 미미,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가 꼽힌다. 전기차 등 급속한 친환경차로의 전환 역시 시장 위축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종되는 경유차가 늘고 있다”며 “전기차 보급 확대가 실적 부진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석유 소비 둔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안정되고, 정제마진이 개선되면서 실적이 호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연구원은 “세계적 탈탄소 기조로 정제설비 증설이 위축돼 오히려 정유사의 펀더멘털이 탄탄해졌다”며 “‘비관의 역설’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 전환으로 시장 위축 가속화”
이에 비해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가가 오르긴 했지만 언제까지 유지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수요가 좋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 하반기 호조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는 하반기 반등을 기대하지만 실적이 좋아지더라도 과거처럼 ‘드라마틱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등락이 있을 수 있지만 친환경 기조로 과거처럼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이 중장기 전략으로 ‘탈(脫)석유’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SK에너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 육성을 위해 미국 에너지솔루션 기업 아톰파워에 SK㈜와 함께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GS칼텍스는 바이오연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항공유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다.
에쓰오일은 수소의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는 전반적인 수소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충남 대산공장 1만㎡ 부지에 연산 13만t 규모의 차세대 바이오디젤 공장을 조성, 친환경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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