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전남편의 등장... 최악으로 치닫는 그녀의 선택
[김상목 기자]
▲ 영화 <러브 라이프> 포스터 이미지 |
ⓒ 엠엔엠인터내셔널㈜ |
신인감독이 미래의 거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목격담
<러브 라이프>를 본 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리 인용해도 식상해질 수 없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불멸의 도입부 문장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의 울림은 고스란히 영화의 정서로 전이된다. 19세기 후반 번영에 들떴던 서구사회의 위선을 통렬하게 후벼 파헤치던 문장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곪은 현대 일본사회로 옮겨놔도 아무런 위화감 없는 '현대성'의 극한에 이미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를 만든 후카다 코지를 처음 접하게 된 건 201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였다. 그의 첫 장편 <환영합니다>를 영화제에서 봤었고, 마침 감독도 첫 내한으로 주연배우 스기노 키키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던 참이다. 블랙코미디에 해당하는 영화였지만 초현실적 판타지와 이민자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시사적 소재가 어우러져 뭐라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질감을 갖춘 영화였다. 비슷비슷하게 다가오던 일본 인디영화 중에서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이 인상적인 데뷔작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선 작품상, 부천에선 넷팩상을 수상하며 작품의 성취에 걸맞는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필자의 뇌리에도 깊숙이 각인되었다.
두 번째 쐐기는 5년 후, 2016년에 돌아왔다. <하모니움>으로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 상을 수상한 따끈따끈한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감독이 내한해서 이것저것 영화에 대한 헛헛증을 풀 수 있었다. 코믹한 정서로 적당히 중화했던 <환영합니다>에 비해 <하모니움>은 불가항력적인 비극의 수렁으로 모두 함께 빨려가듯 이야기가 펼쳐졌다. 독했다. 일말의 희망도 남겨주지 않았다. 생채기처럼 남는 영화였다.
그리고 2022년 또다시 부산에서 신작을 만났다. 이제는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이 되어 제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겠지 돗자리 펴고 점치는 기분이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러브 라이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감독 특유의 고독한 개인들, 그들을 안개처럼 휘감는 시니컬한 상황 묘사, 상호 소통의 불능성이란 한계가 가득한 음울한 세계관이 더욱 밀접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제는 이 감독에게 인간찬가와는 다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물리적으로 무게를 잰다면 압도적 비극에 해당할 <하모니움>에 비해 소소하게 누적되는 중량감이 가득한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극단적 상황설정을 밀어붙여 윤리적 택일로 몰아넣고 예술가연하는 몇몇 과대 포장된 예술영화 거장들의 위악과는 다른, 말 그대로 현미경처럼 우리 내면의 위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의도하지 않은 비극이 겹쳐지는 풍경화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스케일로 그려진 풍경화다.
▲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
ⓒ 엠엔엠인터내셔널㈜ |
타에코는 자상한 남편 지로와 곧 7살이 되는 아들 케이타와 함께 살며 사회복지직에 종사하고 있다.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존재다. 이들 부부는 바쁜 공무 중에도 집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시아버지의 65세 생일 축하 깜짝 파티다. 시아버지 또한 같은 업무에 종사하다 퇴직했기에 지로와 타에코의 직장 동료들 모두에게 대선배에 해당된다. 직원들이 모두 동원되어 깜짝 이벤트를 열심히 준비한다.
시부모들은 타에코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 동에서 거주하기에 곧 도착한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타에코는 아직 그에게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이고 아들 역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관계는 좋지 않다. 시어머니가 애써 남편을 자리에 앉히지만 불편한 기색은 지울 길 없다. 급기야 타에코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시아버지는 심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타에코는 단호하게 취소해주시라 요구하고 시어머니의 중재로 시아버지 또한 사과를 구한다. 상황이 수습되자 이벤트가 마침 도착하고 불편한 상황은 이내 종식된다. 직장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 단란한 축하연이 진행된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스럽던 순간에 비극은 예기치 않게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개별적으로 깃든다.
그 비극이 터진 직후, 케이타가 태어난 뒤 곧 사라져 소식이 끊어졌던 타에코의 전남편 '박'이 나타난다. 비극을 수습하는 것만도 벅찬 타에코에겐 설상가상 같지만 그의 등장 후 타에코는 처음으로 애써 의연하게 버티던 마음의 갑옷에서 풀려나 펑펑 울 수 있게 된다. 전남편은 알고 보니 청각장애인인 데다 외국인이었다. 그것도 한국인이다.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그는 심지어 공원에서 노숙자로 지내던 중이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주제에 박은 타에코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이를 대하는 타에코의 태도는 우리의 통념을 벗어난다. 동정심인지 애정인지 타에코는 박을 돌봐주며 이것저것 챙긴다.
남편 지로는 그런 타에코의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어디 SNS 사연으로 올라오면 뒤집어질 차원의 상황으로 흘러가며 점점 지쳐간다. 주변 사람들은 타에코의 처지를 동정하고 도우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선택은 의외성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런 타에코의 결단은 그가 많은 걸 포기하고 희생하면서도 추구하던 결과와는 번번이 빗나가는 악수의 연속이다. 대체 타에코의 심리와 판단은 어떤 이유에 기반을 둔 걸까?
감독의 일관된 주제의식과 갈등구조
후카다 코지의 전작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신작이 소개될 때마다 챙겨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의 영화들이 품고 있는 공통된 전제들은 ① 가족이라는 인류사회 기본구조를 이루는 공동체의 겉보기와는 다른 허점과 위선들 ② 그러한 허구를 폭로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외부의 침입자의 존재감이다.
<환영합니다>에서 나이차 많이 나지만 무난하게 살던 부부는 이주민들이 부부의 집에 침입하면서 균열에 들어선다. <하모니움>에서 역시 중산층 가정은 오래된 비밀을 품은 남편의 지인이 가족이 운영하는 공장에 입사하면서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듯 상황이 휘몰아친다. <러브 라이프> 또한 진통은 있을지언정 조금씩 간극이 좁혀지던 가족에 온갖 마이너리티 속성을 지닌 전남편이 침입하면서 붕괴 위기에 처해진다. 이는 단순히 상황 설정에 그치지 않고 현대 일본사회가 품고 있는 감추고 싶은 치부에 링크된다.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단일민족의 환상 속에서 여전히 껄끄러운 이방인인 이주노동자(<환영합니다>), 가족의 치부를 대신 떠안고 사회적 낙인이 찍힌 전과자(<하모니움>), 장애인+외국인+노숙자(<러브 라이프>) 공히 현재 일본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상징효과를 톡톡히 소화해낸다.
그렇다면 <러브 라이프> 속 타에코라는 캐릭터는 어떤 존재일까? 강단 있고 야무지게 일도 잘한다. 무책임한 전남편 대신에 홀로 사회복지업무라는 감정소모 어마어마한 노동을 감수하며 어린 아들도 키워냈다. 아들 케이타 역시 한부모 가정이라 해서 특별히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남편 역시 그런 타에코의 매력에 빠져 굴곡 많은 상대를 따지지 않고 청혼해 결혼에 골인했다. 지로 역시 직장 내에서 대단한 인기남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사연있는 데다 애 딸린 며느리를 탐탁찮아 하면서도 시부모 또한 타에코를 함부로 대하진 않을 정도로 타에코의 처신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관객들에게선 근원적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타에코는 왜 하필 사회적으로 열외자의 표본 같은 존재인 박에게 빠져드는 걸까. 그의 선택은 동정심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게 결합된 복잡계에 속하는 걸까. 그리고 왜 모든 일에 꼼꼼하고 인내하던 타에코가 유독 전남편에게만은 한없이 허술하게 무너져 내리는 걸까. 주인공이 매 국면마다 선택하고 그로 인해 파국을 맞는 결정의 순간마다 관객은 도시락 챙겨 뛰어들어 말리고픈 심경이 될 테다.
▲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
ⓒ 엠엔엠인터내셔널㈜ |
하지만 정작 타에코의 매번 결심은 (결과가 최악이라 그렇지) 고귀하고 이타적인 헌신에서 비롯되는 성격의 것들이다. 반면에 그런 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이 혼란에 빠지는 주변 인물들 또한 빌런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선량하기까지 한 존재들이다. 남편 지로가 후반에 보이는 문제도 아내가 자신에 대해 소홀하고 전남편과 이해하기 힘든 행각을 벌이기 때문에 가깝다. 시부모들이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긴 하지만 입장 바꿔놓고 보면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 가능하거나 편을 들 법도 한 내용들이다. 각자의 개별적 상황은 모두 충분히 수긍 가능하거나 최소한 이해는 되는 지점들이다.
유일하게 이 영화 속에서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건 타에코의 심리와 박의 행태다. 그렇다면 타에코는 값싼 동정심에 자신을 맡기는 불장난에 빠져든 존재고 박은 그저 타에코를 착취하는 데 맛을 들인, 소수자 정체성을 팔아먹는 존재인 걸까.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둘을 규정하지 않는다. 한길 사람 속 알 수 없듯이 그 미묘한 간극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예측불가능성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어떤 각성의 단계로 관객을 몰아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타에코에게 외부 세계는 두 갈래로 잔혹하다. 그 압축은 영화 초반에 바로 튀어나오는데 타에코를 대하는 시부모 각자의 언행에서 촉발된다. 시아버지는 원래 점찍어둔 며느릿감 대신 갑자기 등장해 아들의 안정된 진로를 가로막은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결혼한 지 1년된 상황에도 며느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달래고 어르며 불화를 중재하는 게 시어머니의 몫이지만, 그 또한 일단 벌어진 상황 수습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내심을 간혹 드러내고 만다. 케이타를 겉으론 친절하게 대하지만 진짜 손자도 안겨달라는 요구에 타에코는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표정이다. 타에코의 고난과 본의를 누구 하나 온전히 소화하고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편 지로조차도. 하지만 애초에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는 무심한 메시지가 아마 감독의 본심일 테다.
현대 일본사회 조명하는 동시대 봉우리 중에도 특출한
번영의 끝에 서 있던 19세기 말 제국주의 유럽의 좋았던 옛 시절('벨 에포크'라 불리던 바로 그 시간)에 그런 서구문명의 허구와 위선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은유하던 자연주의 문학의 전통을 활동사진으로 되살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 농후하다. 문학적 전통의 이미지 재현에 더해 키타노 다케시, 미이케 다카시, 이상일 등 당대 일본영화계 거장들과 협연하며 <하나비> <오디션> <박치기> <훌라걸스> 등에서 다채로운 인상적 장면들을 담아냈던 명 촬영감독 야마모토 히데오의 솜씨가 화룡점정을 이룬다. 극도로 절제된 톤으로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들은 그 하나하나가 정교한 미장센을 완성하며 상징으로 가득 채워 넣은 정물화처럼 기능한다. 종종 영화를 멈추고 정지화면으로 음미하고플 정도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가 도쿄예술대학에서 키워낸 제자이자 영화적 동료로 우리는 하마구치 류스케를 첫손에 떠올리지만 실은 후카다 코지 역시 그 반열에 속한다. 그리고 둘은 앞서거니 뒤에 서느니 거듭 반복해가며 일본영화계 작가주의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사회의 변화를 변주한다면 후카다 코지는 겉으론 장기 번영중인 일본사회의 연약한 틈새를 메스로 헤집는다. 이 라이벌 관계가 향후 얼마나 풍요로운 유산으로 남게 될지 또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테다. 이 둘에 최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국내 개봉했던 미야케 쇼 등 동 세대 재능 넘치는 소장파 감독들의 경쟁은 근래 침체일로인 한국영화계에 비교되며 일본영화의 저력을 입증하는 예시이기도 하다.
특이하게 <러브 라이프>에는 한국과 수어가 소통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다루기 위해 주요한 코드로 활용된다. 하지만 돌출적인 등장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전작들에서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복잡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세계의 이면과 불규칙성을 다루는 요소로 변주되는 느낌이다. 수어지도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동일한 전문가가 수고해 한일, 남녀, 연령대별 수어의 미묘한 결을 표현해낸다. 보는 시각에 따라 본 작품에서 장애인에 대한 묘사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동 시대 일본영화 차기 거장들이 일관되게 장애 문제에 분량을 할애하는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본 작품에서 타에코로선 재앙의 근원이라 할 전남편 '박'의 캐릭터를 놓고 별 의미 없는 노란이 펼쳐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감독이 내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저 '타자'이자 '이방인' 설정에 적절했기 때문에 활용된 것이라는 해명에 기울어지는 편이다. 우리가 인접국, 특히 북한을 상상 속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차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활용법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해프닝이다.
▲ 영화 <러브 라이프> 스틸 이미지 |
ⓒ 엠엔엠인터내셔널㈜ |
추락의 징후로는 <하모니움>이, 아이러니한 사건은 데뷔작인 <환영합니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반복보다는 심화에 가까운 질감과 깊이를 <러브 라이프>는 구현한다. 연륜이 쌓이면서 갈수록 진화되는 세공, 그리고 롱 테이크와 공간감각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미장센을 통해 주인공의 지독한 고립과 인생의 우연성,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지를 후카다 코지는 지속적으로 소화해낸다.
물론 <러브 라이프>는 데우스 마키나 식으로 뜬금없는 인간찬가로 귀결되진 않는다. 낙관과 희망을 철 지난 유행가처럼 안일하게 반복 노래하는 섣부름은 후카다 코지의 작품세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주인공들은 서로 배신하고 버리고 버림받으며 상대의 호의를 조금씩 배은망덕하게 되받아낸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순전한 악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란 실제로는 종이 한 장 차이이기 쉽다는 것을 이만큼 진하게 담아내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여전히 후카다 코지의 영화는 차분한 척 위장하지만 핏자국처럼 선연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뇌리에 남는다. 마치 타에코와 지로 부부가 행복의 절정에 오르던 순간에 아무도 모르게 터진 참극의 현장과 비행기 구름이 무심하게 흘러간 그림 같은 파란 하늘의 대비가 관객의 심장에 대못을 박듯 말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매 장면 하나하나가 뜯어보면 르네상스 시대 대가들의 작품 속 감춰진 행간의 의미처럼 활용되기에 영화를 곱씹어볼수록 그 진폭은 배가된다.
<작품정보> |
러브 라이프 LOVE LIFE 2022|일본/프랑스|드라마 2023.07.19. 개봉|123분|12세 관람가 감독 후카다 코지 주연 키무라 후미노(타에코 역), 나가야마 켄토(지로 역), 스나다 아톰(박씨 역) 출연 야마자키 히로나, 칸노 미스즈, 타구치 토모로오 촬영 야마모토 히데오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2022 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2022 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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