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대출 이제 다 갚았는데"…팔순 노인, 무너진 집 못 떠났다
“아지매요. 그거 다 못 씁니다. 한 번에 치우게 밖에 내놓으소.”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이웃의 말에 한모(82)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그래도 여기 테레비 다이(TV 수납장) 위쪽까진 안 젖었는데, 테레비는 괜찮겠지”라며 간절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들이 큰걸로 사준 거거든.” TV는 산사태로 쑥대밭이 된 집안에서,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다.
지난 15일 새벽 3시를 넘긴 시간, 경북 예천군 벌방리에 있는 한씨 집 바로 앞을 산사태가 휩쓸고 지나갔다. 마을회관에 대피해 밤을 보내고 16일 오후 다시 찾은 집은 창문으로 햇빛이 거의 새어들어오지 않을 만큼 높은 토사에 둘러쌓여 있었다. 마당은 진흙이 가득해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고, 밥솥도 그릇도 다 흙탕물을 뒤집어 썼다.
“15년 대출로 지은 집, 이제 빚 다 갚았는데….”
맨발로 집안을 오가던 그는 흙 묻은 슬리퍼 하나를 건져내 물웅덩이를 찾아 다녔다. 냉장고에선 음식물들이 다 녹아내려 악취가 풍겼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아깝네. 아까워”
스물 셋에 결혼해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한씨는 이번 산사태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남의 밭에서 일하고, 사과 따주면서 조금씩 모은 돈에다가 15년짜리 대출을 받았제. 그렇게 집 지은 지 15년 됐어. 이제 거의 다 갚아갔는데, 집이 이래 됐네. 살지도 못하게”라고 말했다.
산사태 당시 한씨는 전기가 끊기자 남편과 함께 발전기를 확인하러 나갔다 쏟아지는 토사를 직접 목격했다. 60여 년 째 이 마을에 살았지만 본 적 없는 재난이었고, 80년 넘는 삶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끔찍한 기억이 됐다.
하지만 고통은 이제 시작이다. 집 주변을 둘러싼 토사는 손을 댈 수도 없을 정도다. 중장비 등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씨는 “안이 아주 엉망인데 뭐. 에휴, 여기 살릴 게 뭐가 있겠어”라며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먼지 묻은 얼굴을 닦아냈다. 그래도 한씨는 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거 뭐 다 옮길 엄두는 안나는데, 조만간 자원봉사자들도 와준다고 한다니까… 그래도 목숨 부지해서 다행이지 뭐”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 양반은 밥은 묵고하는가. 묵고 가야지?”란 말도 덧붙였다.
가족사진 아래 무릎 높이 흙더미…보금자리 잃고 눈물
윤씨는 “애들이 9살, 7살일 때 애기 아빠가 (세상을) 떠나삐고, 그 뒤로 죽도록 고생해가며 한푼 두푼 모아 지은 집이라. 1995년이었제. 너무 고생해서 얻은 집이라가꼬 내가 지금도 다 알지. 그때 다른 집이 평당 120만원인데 여긴 평당 150만원을 줬어. 단단하게 지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는 산사태가 삶의 터전을 덮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당시를 떠올리며 다시 눈물을 떨어뜨린 그는 “(14일) 밤 12시가 넘으니까 물이 막 완전히 넘어가뿌고, 그때 마침 (건너편 집) 형님이 불을 켜드라고. 그래서 연락하는데 그사이 담이 무너지고 막 벌건 흙탕물이 내려오니까. 엄청 무섭지. ‘아이고 형님요, 창고도 없어지고 담도 없어졌어요. 이제 대문도 없어졌어요’하는데 또 부엌으로 물이랑 흙이랑 다 들어오는거라. 그래 우리집 넘어가는 걸 형님이랑 다 봤지, 하나하나 자꾸 없어지는 걸 눈으로 전부”라고 말했다.
그 뒤로도 윤씨는 사실상 뼈대만 남은 집과 큰 바윗덩이가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주변을 한참 둘러봤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곤 회관으로 다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치울 엄두도 안나니까. 내일 마을에 도와줄 사람들도 많이 오고 한다니까, 좀 해결될라나 봐야지.”
“종일 퍼날라도 한가득… 놀란 개도 안 자고 안 짖어”
주민 1명이 물에 휩쓸려 실종된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김유종(74)ㆍ이순년(68) 부부는 같은 시각 산사태 피해를 입은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토사물을 퍼내고 있었다. 집앞 도로 곳곳은 수압을 견디지 못해 구멍이 뻥 뚫렸고, 아스팔트가 통째로 휘어지거나 들려버린 곳도 있었다.
이들이 사는 2층 집은 7년 전 귀농한 부부를 위해 막내아들이 손수 지었다. 긁어내고 퍼다버리고, 수없이 반복해 마당을 채운 흙의 반 정도를 치워냈지만 여전히 눈으로 보기엔 한가득 남아 있었다. 이씨는 “아들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다한 소중한 집입니더. 대구 아파트 팔고 들어왔고 아들도 자주 들르는데 놔둘 수가 없으니까 치워야지예”라고 말했다.
그나마 집 안 상태는 부부와 아들이 창고 문짝을 뜯어내 물을 막아내며 사투를 벌인 덕에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진 할 일이 태산이고, 산사태가 남긴 상처도 깊다. “하루종일 흙 퍼다 나르고 저녁되니까 퍼지네. 온통 흙구덩이라서 저걸 우예 다 치울까 싶고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예. 저기 개도 놀래가지고 이제 잠도 안자고 사람 보고 짖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니까. 너무 형편없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도 살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이씨 부부는 다시 마당의 토사를 긁어냈다.
윤정민ㆍ김홍범ㆍ이영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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