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진국"…클리셰 범벅의 로코드라마 ‘킹더랜드’ 인기 요인
남모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재벌 남자 주인공과 언제나 밝고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오래된 기본 공식을 JTBC 토·일 드라마 ‘킹더랜드’는 충실하게 따른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어머니로 인해 웃음을 경멸하게 된 재벌2세 남자 주인공 구원(이준호)과 2년제 대학을 나와 호텔 정규직을 꿈꾸며 궂은 일도 웃으면서 해 나가는 여자 주인공 천사랑(임윤아)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지난 2일 방영된 6회에서 시청률 12%(닐슨, 전국)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 프로그램에 오른 이후, 줄곧 1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화제성도 높다. TV 화제성 분석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킹더랜드'는 7월 첫 주 TV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틀어 드라마 화제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자 주인공이 회사 생활에서 곤란을 겪을 때마다 왕자님처럼 등장해 도와주는 남자 주인공은 조난 당한 여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헬기까지 띄운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과의 알콩달콩한 연애를 통해 세상 물정은 물론, 그간 몰랐던 삶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단 하나의 긴장 요소는 배 다른 누나와의 후계 구도 경쟁이다.
이처럼 인물 설정부터 줄거리, 연출 등 그다지 신선할 것 없어 보이는 드라마를 사람들이 많이 보는 이유는 뭘까. 구원 역을 맡은 이준호는 지난달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아는 맛이 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다소 클리셰적이지만 (동시에) 클래식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조차 정공법으로 언급한 클리셰(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 전개 방식)적 요소는 실제로 '킹더랜드'의 인기 요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 드라마가 매우 많아졌는데, 그럴수록 시청자들이 더 원하는 것은 확실한 효능감”이라면서 '킹더랜드'의 클리셰적 요소가 이러한 효능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오한 의미를 담은 드라마 만큼이나 (요즘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별다른 생각 없이 보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넘쳐나는 장르물에 피로해진 시청자들이 단순하고 빠른 전개의 '킹더랜드'를 찾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요즘 드라마는 복잡하고 어려운 탓에 따라가기 힘든 면이 있다”면서 “'킹더랜드'는 인물의 행동을 예측하기 쉽고, (럭셔리한) 호텔을 배경으로 선남선녀를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OTT 등을 통해 드라마 중반부터 보기 시작해도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젊은 층은 이 드라마의 올드한 스타일을 요즘 드라마와는 다른 신선한 레트로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중장년층은 과거 배우 차인표, 신애라가 나왔던 드라마('사랑을 그대 품 안에') 등을 떠올리며 향수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아이돌 출신 두 배우의 연기와 케미스트리(어울림)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큰 역할을 한다. 주연 배우 이준호와 임윤아는 각각 2세대 아이돌 그룹 2PM과 소녀시대 출신이다. 이준호는 군 전역 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MBC)에서 이산 정조 역을 맡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임윤아는 2007년부터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꾸준히 연기 경험을 쌓아왔다. 공희정 평론가는 “연기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어색하거나 외면받을 법한 진부하고 뻔한 장면도 두 배우가 잘 살려낸다”고 짚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사람들이 클리셰를 싫어하는 이유는 기시감 때문”이라면서 “배우가 연기를 잘 해내거나 새로운 코드가 들어가야 이를 없앨 수 있는데 '킹더랜드'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코드’로 감정 노동자들의 애환을 언급했다.
호텔리어 천사랑을 비롯해 절친 오평화(고원희)와 강다을(김가은)은 각각 승무원과 면세점 직원으로 등장한다. 고객과 상사의 갑질과 동료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웃음과 친절로서 감정노동자의 본분을 다한다. 15일 방영된 9회에서는 이들 절친 삼총사의 부당한 처우를 들은 구원이 '인센티브 트립(포상 휴가)'을 추진한다. “드라마 속 왕자님 캐릭터가 단지 부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정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개념으로 극을 이끌어가면서 클리셰에 변주를 주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화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아랍권 문화 왜곡 논란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방영된 7~8회에서 천사랑을 유혹하는 아랍권 왕자를 돈 많은 바람둥이로 묘사하는 등 희화화,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제작진은 해당 방송분 수정과 함께 한국어, 영어 뿐 아니라 아랍어 사과문까지 올렸다.
정 평론가는 “한국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는 더 이상 내수용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만큼 더욱 섬세하고 주의 깊은 문화적 감수성이 요구된다”면서 “제작진이 논란이 됐던 부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곧바로 조치한 것은 적절하고 건강한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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