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 앞세워 병원 세운 비의료인…대법 "유령회사 인정돼야 처벌"

하수영 2023. 7.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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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뉴스1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를 앞세워 병원을 개설한 것으로 보려면 비의료인의 주도적 관여와 함께 외형상 형태만 갖춘 의료법인을 악용했다는 사정이 나타나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7일 의료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환송했다.

B의료법인 이사장인 A씨는 의사가 아닌데도 의료기관을 개설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의료기관의 실질적 개설자가 B의료법인이 아닌 A씨 개인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실질적으로 의료법인을 만들어 운영했으므로 의료법 위반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의료법인은 형식에 불과하고 A씨가 의료기관의 실질적 개설자라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의료법인 이사와 감사가 모두 A씨 가족과 지인으로 구성됐고 이들 대부분은 의료법인 운영 경력이나 의료기관 종사 경력이 없다"며 "의료법인 운영과 관련한 중요 사항은 A씨가 결정하고 이사회는 단순히 이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또 "A씨 경력이나 경제력 등을 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서까지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도 혐의를 유죄로 봤지만 양형이 무겁다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가 경영난에 처하자 자기 재산을 처분해 운영비로 사용하고 직원 급여 등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심리가 부족했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에 의해 개설·운영됐다고 판단하려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이 기본"이라며 "여기에 비의료인이 외형만 갖춘 의료법인을 탈법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으로 가장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실질적으로 재산 출연이 이뤄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사정이나,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사정이 나타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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