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란듯…사우디·UAE, 중국에 ‘오일머니’ 쏟아붓는다

이승호 2023. 7. 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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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올해 하반기 중국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는 세계 3위 농업기술기업 신젠타다.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모으려는 목표 자금만 90억 달러(약 11조4000억원)로 중국 IPO 사상 네 번째 규모다. 글로벌 큰손인 미국 투자은행들이 자국 정부의 대(對)중국 제재로 참여하지 못하는 틈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기금(PIF)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파고들었다. PIF와 ADIA는 신젠타의 '코너스톤'(초석)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성사되면 IPO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공모주 일부를 배정받게 된다.

이처럼 중동 국가들이 중국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인권·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불화를 겪은 미국을 뒤로하고 새로운 파트너로 떠오른 중국과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동의 중국투자 1000% 급증”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와 UAE 등 걸프국가 기업이 올해 들어 최근까지 중국에서 벌인 사업 인수·투자 평가액은 53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비교해 1000% 이상 급증했다. 블룸버그는 “현재 거래 추세로 볼 때 올해 평가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압둘아지즈 국왕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4번째)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에서 5번째)를 비롯해 카타르, 바레인, 오만, 아랍에미리트(UAE) 정상들이 참석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중동 국가론 사우디와 UAE가 꼽힌다. 지난해 12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사우디를 방문했다. 당시 시 주석과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회담을 한 후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사우디와 중국의 경제협력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지난 3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중국의 정유회사 룽성(榮盛)석유화학의 지분 10%를 위안화로 사들였다. 총 36억 달러에 달하는 거래였다. 지난달엔 사우디 리야드에서 양국이 대규모 비즈니스 콘퍼런스를 열어 총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수천 명의 중국 기업가와 정부 관계자가 리야드를 찾았다. 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우리는 그들(중국)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며 중국과의 경제 협력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UAE도 중국과 경제 협력에 힘쓰고 있다. 총자산이 2800억 달러에 달하는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는 중국 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무바달라의 대변인은 블룸버그에 “장기적 전략에 부합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유망한 기회를 계속 찾고 있다”고 밝혔다.

두 나라와 중국 간의 교역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우디와 중국 간의 무역 규모는 1992년 8억 34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170억 달러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UAE와 중국의 교역액도 11억5000만 달러에서 1070억 달러로 늘어났다.


미국 못 믿는 사우디·UAE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분류되던 사우디와 UAE가 중국에 공을 들이는 건 미국에 대한 불신 탓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외교 관계는 지난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미국 정부가 사우디 당국의 인권 침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악화했다.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직접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사우디는 오히려 세달 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에서 감산 강행을 주도했다.

UAE의 경우 지난해 1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수도 아부다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이후에도 미국이 군사 원조를 머뭇거린 이후 사이가 틀어졌다. UAE는 지난 5월 이란의 유조선 압류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해상 순찰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중동 中 군사영향 커질라…심기 불편한 美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왼쪽부터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회의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동 우방국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틈을 타 중국은 이 지역에서 군사·외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UAE는 2021년 말 중국 화웨이의 통신망을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F-35 스텔스기 구매 협상도 중단했다. 대신 올해 2월 중국산 훈련기 L-15 12대를 수입했다.

지난 3월엔 중국의 중재하에 오랫동안 반목해왔던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정상화에 나섰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사우디는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로 보지 않기 때문에 협력할 다른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UAE의 관리도 “미국이 덜 관여 할수록 중국을 위한 공간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개발한 고등훈련기 L-15. 사진 위키피디아

이를 지켜보는 미국은 내심 초조하다. 특히 중동 내 무기 거래에서 중국 비중이 커지면서 중국과 중동이 경제를 넘어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사우디·UAE에 대한 중국의 무기 판매액이 80% 증가한 반면 미국의 판매액은 30% 급감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쿠릴라 중부사령관은 최근 미 의회에 출석해 “미국은 중국의 중동 지역 침투 시도와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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