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 말해서 체포…中서 '간첩 복역' 일본인 17명 사연

사공관숙 2023. 7.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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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에 반해서 평생 일·중 교류에 몸 담았던 친(親)중파가 한순간에 간첩이 됐다. 베이징에서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다 납치당하다시피 잡혔다. 3년 전 한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 때문에 6년 넘게 징역을 살았다. 2016년 ‘반간첩법(방첩법)’ 위반 혐의로 중국에 구속돼 6년 3월 형 만기 후 지난해 석방된 일본인 스즈키 에이지(鈴木英司)의 이야기다.

2016년 중국 베이징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돼 2022년 10월 석방된 일본인 스즈키 에이지(鈴木英司)가 올해 4월 출판한 자서전 '중국에 구속된 2279일 - 간첩으로 몰린 친중파 일본인의 기록'표지. Rti 캡처


지난 1일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반간첩법' 제정 이래 현재까지 17명 이상의 국민이 중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붙잡혔다.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지만 여자와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복역 중 사망한 이도 있다. 일·중 교류사업 종사자 등 친중 인사는 물론 대기업 사원과 대학교수, 그리고 최근엔 제약회사 임원까지 직장인이나 학자를 가리지 않고 중국 방첩법의 희생양이 됐다. 아직 한국인 구속 사례는 없지만, 강화된 '반간첩법'의 모호한 규정 때문에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스즈키 에이지는 2010년 설립된 '일·중 청년교류협회'의 이사장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친중 인사였다. 어린 시절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에 감명을 받아 중국과 연을 맺은 스즈키는 2016년 구속 전까지 방중 횟수만도 200번이 넘는다. 1997년부터 베이징외국어대학, 중국인민대학은 물론 외교학원, 국제관계학원 등 중국의 외교관과 정보원을 양성하는 기관에서도 강의했다.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신사 참배 등 민감한 문제에서도 양심적인 입장을 보였고, 1999년에는 중국 학생들과 함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주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 폭격을 규탄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의 관료·외교관·학자·기업인 등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방대한 인맥을 구축한 진정한 '중국통(中國通)'이었다.

스즈키같은 '친중파'가 한순간에 간첩이 된 이유는 뭐였을까? 2022년 10월 베이징에서 석방된 스즈키는 올해 4월 출판한 자서전 『중국에 구속된 2279일 – 간첩으로 몰린 친중파 일본인의 기록』에서 그 이유와 심문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놀랍게도 그가 중국 안보 당국에 붙잡힌 이유는 3년 전 중국 외교관 탕번위안(湯本淵)과 식사 중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과 그 부하가 숙청된 사건을 언급한 게 화근이었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수사관은 "신화사(新華社)에서 보도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 함구하지 않으면 모두 위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수사관은 다음날 질문할 내용을 하루 전에 알려주고, 스즈키가 성실히 대답하면 기억력이 비상한 것을 의심하며 더 심문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 정치 특히 중국 공산당의 정책 결정 과정과 관련해 유명한 일본학자들의 연구 내용에 대해 캐물었다고 한다.

스즈키는 자서전에서 간첩죄로 잡혀 와 중국 감옥에서 사망한 일본인도 언급했다. 이 70대 일본 남성은 복역 중에도 늘 일·중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석방되면 여전히 일·중 간 경제 교류를 돕고 싶다 밝힌 일·중 우호 인사였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음에도 12년 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 사망했다. 스즈키는 중국 정보기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서전을 써낸 이유를 자신은 분명 무죄이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일본인 사례(2015년 이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무역·수출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 민간단체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에서는 지난 4월 중국 '반간첩법'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다. 내용을 종합하면, 중국의 '반간첩법'이 처음 시행된 2014년 이래 간첩 활동에 연루돼 중국에서 체포된 일본인은 적어도 17명 이상이다. 그중 11명은 만기 또는 석방으로 귀국했고, 5명은 여전히 형이 집행 중이다. 복역 중 사망한 1명은 70대 노인이었다. 대부분 50~60대 남성이 체포됐지만, 50대 여성이 붙잡힌 경우도 있었다. 확정된 형량으로는 최소 징역 3년에서 최대 15년까지였고, 이들 중 적게는 3만 위안에서 많게는 50만 위안까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밝혀진 신분과 직업으로는 재일교포, 일·중 교류사업 관계자, 사업가, 대기업 직원, 대학교수, 제약회사 임원 등이다. 구속되진 않았지만 면책 특권을 받는 일본 외교관도 간첩 조사를 피할 순 없었다. 지난 2월 중국 관영지 광명일보 평론부 부주임 둥위위(董鬱玉)가 스파이 혐의로 구속되자, 함께 식사했던 일본 외교관도 호텔 방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 밖에 언론에 알려진 대표적인 구속 사유는 중국 내 군사 시설 촬영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체포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형량이 가장 무거운 혐의는 항공모함, 핵잠수함 기지 등을 촬영하는 국가 기밀 수집 행위이다. 북·중 접경지대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북한 관련 인사들과 접촉한 경우도 간첩 행위로 간주돼 구속됐다. 이번에 개정된 '반간첩법'의 적용 범위는 더 모호해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일반적인 학술 교류나 자료 수집, 중국 정부 관료 및 기업가들과 활발한 교류, 빈번한 출입국 등 정상적인 교류 활동도 간첩 혐의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지난 3월 20년 넘게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한 제약회사 고위직이 베이징에서 귀국길에 체포되자, 중국 내 일본 기업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에 25만 명이 넘는 교민이 살고 있는 한국도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9년간에 걸친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간첩 관련 수사와 체포·처벌은 중·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자국민 석방'은 중국과 일본의 고위급 회담의 단골 의제다. 한국 외교 당국에 따르면, 간첩 혐의를 받아 체포된 한국인의 사례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이번 '반간첩법' 개정으로 중국에 있는 학자·기자·사업가·주재원·종교인 등 한인들도 중국 '인질 외교'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친중파 '중국통' 같은 우호 인사도 예외 없이 스파이로 몰려 체포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와 대비가 필요하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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