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목격한 12세 소녀... 아이가 보여준 진실
[이학후 기자]
▲ <블레이즈> 영화 포스터 |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귀를 완전히 덮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던 12세 소녀 블레이즈(줄리아 새비지 분)는 제이크(조쉬 로슨 분)가 해나(야엘 스톤 분)에게 가한 끔찍한 성폭력 범죄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블레이즈는 경찰서와 법정에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서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블레이즈는 잔혹한 현실을 피해 자신만의 도피처인 상상의 세계로 숨어버리고 그곳에서 마법의 용 '제피'와 함께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잊고자 노력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딸 블레이즈를 보며 아빠 루크(사이먼 베이커 분)의 걱정은 점차 커진다.
영화 <블레이즈>는 강간과 살인을 목격한 12살 소녀가 겪는 트라우마와 그 두려움에 맞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가슴 아픈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각본과 연출은 호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초상화 공모전인 '아치볼드 상'을 2회 수상한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인 델 캐서린 바튼이 맡았다.
▲ <블레이즈> 영화의 한 장면 |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
<블레이즈>는 성폭력 범죄를 목격한 10대 청소년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블레이즈는 범죄 현장을 목격한 후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성폭력 범죄를 목격한 충격과 범인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한 죄책감, 피해자들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도리어 가해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이전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
특히 블레이즈가 증인으로 나오는 법정 장면은 (호주의)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실망시키는지를 폭로한다. 이렇듯 영화는 충격, 두려움, 죄책감, 분노, 혐오가 뒤섞인 감정적 소용돌이에 몸부림치는 블레이즈를 통해 "아이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블레이즈는 잔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 속의 세계로 들어가 친구인 드래곤 '제피'에게 의지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깨며 손상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블레이즈>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네버엔딩 스토리>(1984),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비스트>(2012), <몬스터 콜>(2016)를 연상케 한다. 드래곤 제피는 블레이즈에게 용기를 주는 친구이자 외부의 힘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자다. 또한, 블레이즈의 분노를 형상화한 화염(blaze)을 내뿜는 존재이기도 하다.
▲ <블레이즈> 영화의 한 장면 |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
영화의 정서적인 힘은 주연을 맡은 줄리아 새비지 덕분이기도 하다. 줄리아 새비지는 블레이즈의 복잡한 감정을 강렬한 연기로 소화한다. TV 시리즈 <멘탈리스트>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로 친숙한 배우 사이먼 베이커는 블레이즈의 아빠로 분한다. 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딸을 걱정하나 정작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아버지를 보여주며 캐릭터에 입체감을 입혔다. 사이먼 베이커는 배우뿐만 아니라 총괄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는데 희망과 회복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의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블레이즈>는 도입부에서 '눈'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눈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느낌이 든다. 눈은 화염을 의미하는 제목 <블레이즈>, 영화에 나오는 매미 껍질과 연결되어 '분노'와 '성장'의 뜻이 더해지며 여성을 노린 성폭력 범죄와 미흡한 사법 제도를 향한 미투 시대의 외침으로 발전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를 소재로 삼아 아동을 성폭력 범죄의 목격자로 등장시킨 <블레이즈>는 피하고 싶었던 진실을 과감히 응시한 용감한 데뷔작이다. 스위스 뉴샤텔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술상을 수상하고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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