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 장씨도 못 찾았다…"나만 살아" 가족들 발 동동
17일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8명을 수색하고 있지만, 진입로 붕괴 등으로 소방당국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실종자 가족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오전 효자면 백석리 산사태 현장. 산길이 폭우로 무너져 내리면서 대형 장비 진입이 어려워 소방 관계자들이 지게에 물품을 실어 날랐다. 경찰 10여 명은 무릎까지 오는 펄에서 탐지봉으로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이동이 쉽지 않아 넘어지고 일어서길 수없이 반복했다. 옆에서는 굴삭기가 흙을 파내고 있었다. 구조견 3두와 드론 1대가 투입돼 실종자를 찾아 나섰다.
현장을 지휘하던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현장으로 오는 유일한 산길이 유실돼 덤프트럭이 진입을 못 하고 있다”며 “흙을 덤프트럭으로 옮겨 날라야 바닥이 보이는데 굴삭기로 퍼내기만 하니 작업이 지체된다. 그래도 모두 최선을 다해 실종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백석리에서는 지난 15일 오전 5시 16분 고지대에서 토사가 쏟아져 내려오면서 13가구 중 5가구가 유실됐다. 당초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으나, 전날 오후 3시 45분쯤 수색 작업 중 매몰돼 있던 A씨(67) 시신이 발견됐다. A씨는 한 종합편성채널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장모씨 아내인 것으로 파악됐다. 발견 장소는 집터에서 약 20m가량 떨어진 지점이었다.
소방 관계자는 “장씨 지인인 굴삭 기사가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어 근처를 파내다 가구나 집기류로 장씨 집 내부인 걸 알아보고 구조작업 끝에 실종자를 발견했다”며 “이후 주변을 다 뒤졌지만 장씨는 찾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바로 아랫동네인 은풍면 일대에서도 이번 폭우로 차 2대가 급류에 휩쓸려 3명이 실종됐고, 1명은 컨테이너 주택에 있다가 물에 휩쓸렸다. 소방당국은 탐지견을 투입해 다리 주변 등을 수색하고 있다. 다만 은풍면에서도 도로 곳곳 유실돼 샛길 하나로 건너면서 전날엔 소방차가 빠져 아예 길이 막히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날 백석 경로당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울음을 쏟아냈다. 은풍면 실종자 가족은 “귀농한 지 얼마 안 된 여동생이 실종됐는데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기 깨끗한 은풍면으로 이사 오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는데 나만 살았다. 내 잘못 같아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인근 감천면 진평리와 벌방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에서 토사가 유출되면서 3명이 실종된 현장에서는 가족들이 눈물을 쏟아내며 애타게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 윤모(62)씨가 산사태에 휩쓸리는 장면을 불과 몇 미터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모(63)씨와 소식을 듣고 수원에서 급히 내려온 아들(29)은 붉게 충혈된 눈을 연신 닦아냈다.
이씨는 “비가 많이 오니 어딘가 대피하자는 생각으로밖에 나와 있었다. 내가 얼른 나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내는 무서웠나 보다. ‘집보다 안전한 곳이 있겠냐’며 고민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내가 보고 있는 사이 아내가 있는 곳을 산사태가 덮쳤다. 몇초도 안 돼서 건물과 함께 쓸려 내려갔다”며 울먹였다.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벌방리를 찾아 실종자 가족과 주민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소방대원들을 격려하고, 실종자 수색 등을 위한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행정안전부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40명, 실종자는 9명이다. 부상자는 34명으로 집계됐다. 경북에서는 모두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 17명이 다쳤다.
예천=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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