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서 토론수업, 신기했어요"... 학생 글에서 희망을 봤다

이준만 2023. 7. 17. 12: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퇴직인 교사입니다, 학생의 마지막 인사에서 토론식 교수법의 위력을 봤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준만 기자]

 학생이 그린 캐리커처
ⓒ 이준만
 
나는 오는 8월 말 명예퇴직 예정인,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7월 17일에 방학해서 8월 16일에 개학 예정이다. 개학일부터 명퇴일까지 근무해야 하지만 그 기간에 연가를 내주어야 학교도 좋고 나도 좋아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7월 14일이 실제적으로는 마지막 근무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2학년 1반 부담임을 맡고 있는데, 지난 7월 14일 1교시에 반장이 쭈뼛거리며 오더니 교실로 좀 와 달라고 한다. 대략 짐작이 갔다. 아마도 담임교사가 시켰으리라.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음정과 박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음정아, 박자야! 어디 있니?'라고 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러더니 반장이 한 2절지 정도 되는 종이를 펼쳐 들고 나오더니 나에게 건네준다. 종이 한가운데 내 캐리커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로 글씨들이 빼곡했다. 또 부반장이 2학년 1반 학생들이 주는 상장을 전달해 준다. 학생들과 함께 사진 찍고, 한마디 하라고 해서 대충 무어라고 이야기한 다음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무실로 와서 2절지 종이에 빼곡한 글들을 읽어 보았다. 그중 몇 가지 글이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순전히 내 자랑인지라 좀 쑥스럽긴 하나, 퇴직하는 마당에 뭐 어떠랴 싶어서 학생 글 그대로 소개해 보련다. 소위 '선생질'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내가 해왔던 하브루타(Havruta: 논쟁을 통해 공부하는 유대인식 토론교육Havruta: 논쟁을 통해 공부하는 유대인식 토론교육) 수업, 즉 수업에서 교사의 설명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만들게 하는 참여식 수업을 거론한 글이었다.
 
안녕하세요, 쌤! 처음 경험하는 하브루타 수업이, 강의식 수업에 적응되었던 저에겐 약간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익숙해졌고 점점 질문을 만드는 게 즐거워졌어요.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제일 신기했던 게 하브루타 수업 후 시집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제가 친구가 읽고 있던 시집에 관심이 생긴 것이었어요. 저에게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의 영향력이 저에게 다가온 것 같아요. 퇴임 후에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스승의날, 학생이 그려준 캐리커처
ⓒ 이준만
 

이 글을 읽고 가장 뿌듯했던 지점은, 시에 관심이 없던 학생이 하브루타 토론식 수업을 통해 시에 관심이 생겼다고 이야기한 부분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을 나누는 하브루타 수업을 했더니, 새로운 관점으로 문학을 보게 되었고 싫어했던 시에 관심이 생겼다니. 이 정도면 문학 수업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의 고등학교 문학 수업을 돌이켜 보라. 연령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대개 '밑줄 쫙'이 제일 먼저 생각나지 않을까 한다. 지금 고등학교 문학 수업은 예전의 '밑줄 쫙'에서는 어느 정도 탈피했다고 보아야 마땅할 터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느 정도' 탈피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정도로는 문학 수업을 받은 학생이 문학을 좋아하게 되지 않는다. 교과서 밖의 시나 소설을 읽어 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기 어렵다.

그러나 위 학생의 이야기처럼,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 그런 가능성이 열린다. 또 그런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사의 그 어떤 설명도 듣기 전에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나누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하는 그 시간 자체로 말이다. 

이쯤에서, 그러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절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 자료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충분했다. 2학년 문학 과목을 내가 한 반, 다른 두 교사가 각각 세 반씩 맡아 수업했다.

내가 가르친 반의 1학기말 문학 성적 평균은 중간 정도였다. 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모두 100점을 맞은 학생이 딱 1명 있었는데, 내가 가르친 반 학생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하브루타 수업 때문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잘 볼 수 없다든지, 학력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우려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의 글을 하나만 더 보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2학년 올라오고 나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토론하고 고민해 보는 수업을 해보게 되어서 신기하고 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 좋은 경험을 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돼요. 더 많은 나날을 보내면서 배움을 받고 받을 것을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꽃길만 걸으시길 바랄게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토론하고 고민해 보는 수업을 해보게 되어서 신기하고 또 재미있었'다고 했다. 글이라는 게 약간 미화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수업에서는 학생 나름대로 재미를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중간 정도였던 학생으로 기억하는데, 만약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했더라면 이 학생은 수업에서 그 어떤 재미도 못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 학교 후배 국어 교사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강의식 수업을 하지 말고, 하브루타 수업과 같은 배움 중심 수업을 한번 해 보자고!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역시 걸림돌은 수능과 내신 성적이었다. 하브루타 수업과 같은 배움 중심 수업을 해도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내겐 있었지만, 혹시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다른 이들의 불안감까지 잠재울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2학년 여러 국어 수업들 중, 나만 홀로 하브루타 수업을 했었는데 그 결과 학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참 뿌듯했다. 8월에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임을 할 수 있을 듯하다. 하브루타 수업과 같은 배움 중심 수업이,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수업 방식이라는 점을 다른 교사들도 깨달아 수업 방식을 과감하게 바꿔 시도해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