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봐주던 '아세안 웨이' 더는 없나…ARF 의장성명 CVID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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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CVID 담길 듯
17일 외교부 당국자는 "ARF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결정에 따라 의장성명 발표의 시기는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선 북한 관련 문안에 CVID가 무난히 반영될 전망"이라며 "북한에 대해 따끔한 경고가 될 단호하고 단합된 메시지가 나오도록 조율을 거쳤다"고 말했다. ARF 결과 문서인 의장성명은 보통 폐막 후 며칠 내 발표되는데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작성권을 갖고 각국과 문안을 협의하고 있다.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막을 내린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이며, 의장성명은 논의의 결과물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열렸던 ARF 의장성명에도 "한반도의 CVID 달성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CVID는 북한이 거부해온 검증(V)과 불가역성(I)을 핵심에 두고 있어 북한은 과거부터 "패전국도 아닌 우리에게 무엇을 '되돌려 세울 수 없다'고 하느냐"며 CVID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반발해왔다.
특히 이번 ARF에선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7년만에 처음으로 아세안 외교장관 차원의 대북 공동성명이 나왔다. 미얀마를 제외한 아세안 9개국 외교장관들은 북한이 지난 12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자 하루만에 성명을 내고 "아세안 주도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진 (북한의) 행동에 깊이 경악(dismayed)한다"며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한다"고 했다. 지난 13일 열린 한ㆍ아세안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이례적으로 북한을 "규탄한다(condemn)"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냉랭해진 아세안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ARF에선 아세안 국가들 중 북한 문제와 관련해 상호 자제를 촉구하거나 양비론적 발언을 하는 나라가 거의 없었고, 북한을 대하는 분위기가 훨씬 냉랭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아세안이 대화와 외교, 불간섭을 강조하는 이른바 '아세안 웨이(Asean Way)'의 관용을 더 이상 북한에게 베풀지 않겠다는 경고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올해 ARF의 흥행을 위해 최선희 외무상의 참석에 공을 들였지만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기는 커녕 ICBM을 쏘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의장성명에도 이런 인도네시아의 실망감이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961년 북한과 수교한 인도네시아는 원래 북한의 전통적 우방 중 하나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된 사건 이후 아세안 국가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이후 강력한 대북 제재가 잇따르며 점차 등을 돌려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2018년~2019년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북ㆍ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긴 했지만 평화 무드는 잠깐이었고, 최근 들어선 아세안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중요한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 중 ICBM까지 쏘는 행태에 크게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립 속 존재감 전무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국경 봉쇄를 이어가면서 "외교 기능 자체가 '퇴화'된 듯 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역대 ARF를 외교노선 선전의 장으로 십분 활용해왔고, 이 때문에 정상적인 외교 무대에선 보기 힘든 북한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흥행 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번 ARF에서는 북한이 기자회견을 자청하거나 취재진에 보도자료를 뿌리던 모습은 사라졌고, 사실상 외교전을 포기한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고 한다.
북한은 2019년부터 5년째 외무상이 아닌 현지 대사가 ARF에 참석하고 있는데 올해 대표로 참석한 안광일 주아세안 북한대표부 대사(인도네시아 대사 겸직)는 지난 13일 만찬 리셉션에서 대사급 인사끼리 있는 공간에 10여분 머무르다 자리를 떴다.
이튿날인 14일 ARF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안 대사는 "북한의 도발은 주변 나라들에 위협이 아니다. 한ㆍ미 연합훈련으로 인한 자위적 방어 조치다" 등 미리 준비한 발언만 읊는 게 전부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안 대사는 리셉션과 회의에서 다른 국가 인사와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ICBM 발사 의도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도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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