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中 '반도체굴기' 드라마 방영에도…더 높아지는 수입장벽
'자력갱생' 성공 강조하지만 어려움 커져
중국 관영통신들이 최근 반도체 장비 자체기술 개발에 성공한 기술진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월부터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의 대중수출이 제한돼 중국 반도체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국 기술력을 과시하며 내부 여론 단속에 나서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제 중국 반도체 업계 내에서는 미국 주도의 대중제재가 점차 힘을 받으면서 매출감소와 고립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역시 중국의 반도체 수입 급감에 따라 반도체 업체들의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양국이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협상을 서둘러야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10일부터 시작된 ‘반도체굴기’ 드라마
16일 신화망 등 중국 현지매체들은 지난 10일부터 알리바바그룹의 동영상 플랫폼인 ‘유쿠(Youku)에서 ’아적중국심(我的中國芯)‘이란 드라마가 방영이 시작됐다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해당 드라마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이후 노광장비 기술을 독자 개발해 성공하는 한 스타트업 기술진들의 고군분투와 기술개발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해당 드라마 방영에 외신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드라마는 ’마이 차이니스 칩(My Chinese Chip)‘으로 불리고 있지만 공식 영문제목은 ’베스트칩(The Best Chip)‘으로 중국 정부가 독자기술 개발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 나타내고 있다"며 "중국어 제목 마지막에 붙은 심(芯)은 중국에서 ’마음(Heart)‘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예고편에서부터 "중국에 대한 장비 제재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며 현실을 뚜렷하게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드라마란 것이다.
앞서 중국은 미국 주도의 대중제재 강화와 반도체 장비수입 제한이 강화되면서 자체기술 개발, 이른바 자력갱생을 매우 강조해왔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해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해외 기업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핵심 기술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겠다"고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9월부터 ASML 심자외선(DUV) 장비도 수출제한하지만 중국 반도체 업계의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ASML의 첨단장비 수입 장벽이 점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CNBC에 따르면 ASML은 지난달 말 성명을 통해 그동안 대중국 수출이 허용됐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에 대한 제재가 9월1일부터 시작돼 중국으로의 수출은 네덜란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고 밝혔다. 앞서 네덜란드 정부는 규제 대상과 장비, 업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자국 반도체 장비기업이 일부 반도체 생산설비를 중국에 수출하기 위한 허가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9월1일부터 시행한다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중국에 대한 자국 첨단 반도체와 장비 수출 통제 규제를 발표한 이후 올해 1월부터 네덜란드와 일본이 여기에 동참의사를 밝히면서 앞으로 장비수출 제한폭은 단계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다른 나라를 협박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탄압과 포위에 동참토록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네덜란드에는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하지 말고 양국 기업과 쌍방의 공동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반도체 규제 연대를 깨트릴 뾰족한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中 상반기 반도체 수입 18.5% 급감…업계 피해 확대중국 정부는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수급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중국 해관총서(세관) 자료를 인용해 상반기에 중국이 수입한 집적회로(IC) 개수가 전년동기 2796억개 대비 18.5% 감소한 2277억개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같은기간 수입 금액도 1626억달러(약 207조원)에 그쳐 전년동기대비 22.4% 급감했다. SCMP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에 대한 중국의 접근 제한을 강화한 가운데 이러한 무역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중국 전자업체들은 첨단 반도체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가격이 2배 이상 비싼 밀수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 정부도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기업들의 어려움은 보다 커질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 제조장치 등 23개 품목을 대중 수출 규제대상에 추가하기 위해 개정한 법령을 오는 23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23개 품목에는 극단자외선(EUV) 관련 제품 제조장치와 기억소자를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는 식각장치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회로 선폭이 10~14 나노미터(나노는 10억분의1) 이하인 반도체 제품의 제조에 필수적이다. 중국 반도체 제조공장들이 자체 기술확보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중국 반도체 업계 전반의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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