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부는 민주노총의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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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충격적인 영상을 접했다.
북한군인 한 명이 "김관진 놈을 찢어 죽이자!"고 외치자 맹견들이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 사진이 붙은 허수아비를 물어뜯었다.
"민족 반역자 김관진 놈을 향해 쏴!"란 명령이 떨어지자 군인들이 김 전 장관의 사진이 붙은 표적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북한이 우리와 휴전선을 두고 대치 중이며 국방백서에 명시된 주적인 반면,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합법 노조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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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충격적인 영상을 접했다. 북한군인 한 명이 "김관진 놈을 찢어 죽이자!"고 외치자 맹견들이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 사진이 붙은 허수아비를 물어뜯었다. 다른 영상도 비슷했다. "민족 반역자 김관진 놈을 향해 쏴!"란 명령이 떨어지자 군인들이 김 전 장관의 사진이 붙은 표적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누더기가 된 표적은 대전차 로켓까지 맞고 산화했다.
10년 뒤인 2023년 7월, 바로 이번 달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진이 붙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준비했다. "윤석열 놈이다! 대가리부터 깨겠다"고 사회자가 외치자 얼음덩어리는 파업 참가자들의 커다란 해머에 산산조각이 났다. 윤 청장에 대해선 "경찰청장은 정권의 개"란 구호가 쏟아졌다.
민주노총의 2주간 총파업이 지난 15일 마무리됐다. 예전과 같은 화염병과 죽창은 없었다. 하지만 후진적 집회 양상은 여전했다. 특정 인물의 사진에 해를 가하는 행위 자체는 비슷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북한이 우리와 휴전선을 두고 대치 중이며 국방백서에 명시된 주적인 반면,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합법 노조의 일원이다. 진정 노동권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면 민주노총은 적에게 하는 폭력적 조롱이 아니라 평화적, 합리적 대화를 요청해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수차례 "정치 파업과 불법 시위 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정치 파업'으로 변질 우려도 현실이 됐다. 노동자 권익 향상 주장보다 정권 퇴진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중단 등의 주장이 총파업 전면에 섰다. 노동권 신장과는 거리가 먼 사안이다. 정권 퇴진 목소리에 '주 69시간제 반대'와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권 관련 주장은 희미하게 묻혔다.
이미 민주노총의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 과격한 행태와 조합원 이익과 무관한 정치 파업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동자를 위한 노조라면 이제는 노동권 신장을 위한 대화와 타협, 합법적 노동운동에 힘을 쏟을 때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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