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10년 후 韓 과학기술 인재 씨가 마른다
'인구절벽' 시대, 과기 인력 확보 치명타
"학제 개편 등 특단의 대책, 근본적 전환 필요"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고령화지수 1.67(소년 1인당 65세 이상 노인 숫자·2023년). 인구절벽 시대를 뜻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현 기술 수준에서 한 사회가 계속 발전하고 규모를 키우려면 분야별 인재 풀이 늘어나고 생산가능 인력 규모의 유지·증가, 생산성 제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로막을 인구절벽이 마치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특히 첨단 과학기술이 국가 운명을 좌우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공계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 인력부족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법률(The 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면서 앞으로 반도체에서만 30만명, AI에선 2029년까지 100만명이 더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중국도 반도체 전문인력 25만명(2021년 기준), AI 전문인력은 500만명(2022년 기준)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17만7000명(2021년), AI 3만명(2022년)이 필요한 상태다. 일본의 경우 2030년까지 AI 부분에서만 27만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대만도 2021년 8월 기준 반도체 인력 부족 규모가 전년 대비 44% 늘어나는 등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에 국내외 기업들의 인재 쟁탈전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8월 인재 확보를 강조한 후 주요 경영진이 참여하는 기술 커리어(T&C) 포럼을 개최하는 등 총력전이다. 현대차그룹도 국내 최초 해외박사 인재 국내 초청 채용행사(현대 비전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LG그룹은 민간기업 최초로 AI대학원 심포지엄을 주관하기도 했다. 해외 기업의 한국인재 확보전도 치열하다. 마이크론, 애플·아마존 등에서 국내 반도체 실무자·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고, 포드는 한국어 능력자를 배터리 부문에서 우선적으로 뽑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업체 CATL-BYD에서도 한국지사를 통해 인재 스카우트에 나섰고,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는 최근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출신 직원들을 대거 영입했다. 오현환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본부장은 지난 12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 토론회에서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과도 인재 확보 전쟁을 벌여야 하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면서 "우리나라는 기존의 제도를 조금씩 수정하는 데 그치고 있는 데다 부처별 대책 마련이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기준 5184만명인데 계속 감소해 2070년엔 3766만명에 그칠 전망이다. 65세의 고령인구는 2020년 815만명에서 2070년 1737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반면 생산연령(15~64세) 인구는 3738만명에서 1747만명으로 대폭 감소한다. 여기에 주요 국가들이 갈수록 고등교육 진학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대학생 학령인구(18~21세)는 2021년 241만명에서 2030년 187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이공계 대학·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감소 추세다. 2020년 이공계 대학생들이 대학원 진학률은 9.3%로, 2015년 11.5%에서 소폭 줄었고, 학부 신입생 충원율도 2021년 94.3%로 2015년 99.0%에서 다소 후퇴했다.
연구 현장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기준 50세 이상 연구원의 비율은 13.5%로, 2012년 9.6%보다 50%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30대 연구원의 비율은 같은 기간 47.1%에서 37.7%로 뚝 떨어졌다. 특히 기업체에서 50세 이상 연구원들의 비중은 2013년 36.5%에서 2021년 59.2%로 급속도로 고령화됐다.
해외 인재 유치는 여전히 어렵다. 202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한국에 대한 해외 고급인재 유치 매력도는 63개국 중 49위로 2015년 37위에서 대폭 추락했다. 지난해 글로벌 인재 유입 매력도 평가(INSEAD)에서도 133개국 중 55위에 그쳤다. 오 본부장은 "합계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2017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13년 후면 대학 신입생의 숫자가 현재의 3분의1에 불과할 것"이라며 "앞으로 이공계 인력이 상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얘기"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국내 기업들이 최근 급히 인재 확보에 나서면서 연봉을 올리는 바람에 연구보다는 취업 선택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잠재적 연구 역량 후퇴로 이어져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고 우수 학생들의 의대 이탈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획기적 대책 절실
미국은 최근 고학력 기술자들에게 고용주·노동허가가 필요없는 영주권(NIW)을 주고 있다. 심지어 한국 배터리·반도체 전문가들을 빼가기 위해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를 신설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독일·일본·영국·중국 등 주요 기술 강국들도 모두 비슷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인구절벽 시대에 대비한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획기적·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형편이다. 오 본부장은 고등교육·연구시스템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대학을 교육 중심·연구 중심으로 분리해 인구 감소를 전제로 다운사이징해 각자의 역할에 맞도록 재편해야 한다"면서 "교육 중점 대학은 노동인력의 신속한 공급을 위해 학과 시스템 혁파·융합 교육·기간 축소 등이 필요하며 연구 중심 대학은 기관 중심의 연구개발(R&D) 수행, 대학원 처우 개선·연구몰입환경 조성·해외 유학생 확보 등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또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공공기관 지정 제외와 보상·지원제도 강화 ▲우수 연구자 정년 연장·연구 지속성 강화 ▲재직자 역량 강화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비자 개선 등 정주 여건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원은 다소 결이 다른 주장을 내놨다.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되며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20년 전부터 과학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작 그동안 이공계 출신 취업률은 감소·제자리걸음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학사 출신의 취업률은 2013년 71.3%에서 2021년 64.9%로 오히려 줄었고, 석사는 같은 기간 82.7%에서 84.6%로 제자리걸음했다. 박사 출신도 81.1%에서 88.6%로 크게 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들이 전공을 살린 비율도 이학 계열이 2021년 기준 25.0%, 공학 계열이 39.7%에 그쳤다.
엄 선임연구원은 "언제부터, 얼마나,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부족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현상·전망을 모니터링해 대응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직이 노동 시장에서 전문직으로 인정받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합적인 조정 체제를 구축하는 등 인구 감소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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