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면 척'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

배여진 2023. 7. 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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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곁을 만드는 사람> 을 읽고

[배여진]

 책 <곁을 만드는 사람들> 표지
ⓒ 오월의봄
며칠 전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외국인 노동자를 잡아 1시간 넘게 집단으로 구타한 사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건이 경찰로 넘겨진 다음이다.

10대들의 폭행은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멈췄는데, 가해자 4명은 공동폭행 혐의로 입건됐으나 귀가조치 됐고, 피해자인 외국인 노동자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구금되었다는 것.

이 기사를 보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전형적인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피해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가두다니. 정말 미개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지난 3월, 경찰은 태국의 유명 가수가 내한하여 공연하는 공연장을 급습하여 미등록 이주 노동자 83명을, 3월 중순경에는 교회에서 예배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9명을 체포하여 추방하였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인권적이고 미개한 일들의 장면들이다.

이주활동가, 피해당사자이자 투쟁가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일손이 부족하다며 우는 소리를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불법체류자들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더니 단속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여 최소한의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토끼몰이식 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는 '정성'의 1/10만 쏟아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크게 향상될 텐데 말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나라까지 와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이주노동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꽤 오랜 세월 반복되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책 <곁을 만드는 사람>은 이주노동자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여러 영역에서 이주활동가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나현, 섹 알 마문, 샤말 타파, 또뚜야, 차민다, 놀리 6명의 구술 기록이다. 이들 중 몇은 단속과 추방의 피해당사자이기도 하고, 자신과 동료들이 겪는 차별에 맞서 싸운 투쟁가이기도 하다.

강제 단속과 추방의 두려움으로 무력하기만 할 것 같은 이주노동자 한 명 한 명은 서로 연대의 끈으로 이어져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위의 6명은 자신들이 싸워온 투쟁과 삶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기록으로 남긴다.

이들도 이주노동자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이주노동자들의 고충과 마음을 더 잘 알고, 그것들을 위해 시민사회와 정부가 어떤 역할들을 더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척 하면 척'이라는 말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일테다.

한국 이주노동의 역사는 약 30년 정도이다. 베트남에서 스물 두 해를 살고, 한국에서 28년째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김나현은 이주노동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의 이슈도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고, 이주운동의 영역도 확장되었고, 이주운동 단체 활동도 세분화되었다고 보며, 이제는 이주 정책에 대한 통합적인 활동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55쪽)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섹 알 마문(이하 마문)은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등록 신분으로 한국에 와 마석가구 단지에서 일을 하며 노조 활동을 하고, 명동성당 농성도 함께 하다가 표적 단속에 걸려 추방되었다가 비밀 연애를 하던 여자친구와 급 혼인신고를 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영화 같은 인생사에 운명처럼 영화감독이 되었던 것일까?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카메라로 따라가며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다. "한국사회는 집회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저희가 소수 집단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문화예술은 그런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요."(109쪽) 투쟁은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회에 참여하여 팔뚝질 하는 것만이 투쟁의 전부는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뚜벅뚜벅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필름의 무게가 그들의 삶의 무게만큼 무겁지 않길 바랄 뿐이다.

세 번째 구술자인 네팔 출신의 샤말 타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요구한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의 대표였다. 하지만 표적 단속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붙잡혀 강체 추방을 당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네팔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에서 한 노동운동을 후회하는 대신 그렇게라도 싸운 덕분에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었고, 지금 후배들이 좀 더 당당히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미얀마 출신의 또뚜라는 한국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일을 하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프레스 사고로 손이 잘리는 사고를 목격한 뒤 일주일만에 공장을 나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 된다. 혹여라도 단속되어 추방될까 늘 불안한 마음으로 집 문을 나서던 그는 한글을 배우려고 찾아간 단체에서 희망을 품게 되고, 이후 미얀마 공동체를 설립하여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활동과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스리랑카 출신의 프라사드 차민다는 스물다섯 살에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3년간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늘어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일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한국인들이 내뱉는 차별의 언어와 욕을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어 실력이 좋으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친구가 퇴직금을 받기 위해 노조 사무실을 함께 찾았다가 노조활동가가 되었다. 4년 넘게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차민다는 후배들 곁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 구술은 필리핀 출신의 놀리(가명)이다. 그는 필리핀에서도 노동운동을 했고, 한국에 와서도 일하면서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만들어 여러 어려움을 겪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봄날의 햇살' 같은 이주활동가의 존재

구술기록에 함께한 6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일을 하러 한국으로 와서 새로운 정체성들을 찾았다는 것이다. 누구는 노조 활동가가 되었고, 누구는 영화감독이 되었고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주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들을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어떤 것을 함께 모색해볼 수 있을지는 독자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숙제이다.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을 기록한 <제7의 인간>의 저자 존 버거는 책에서 평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등이란 기능이나 능력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라고. 누군가와 누군가와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느 한 쪽 존재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급'이 다른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며, 기능이나 능력을 핑계로 그 '급'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활동가들의 긴긴 싸움은 평등을 향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초 법무부는 불법체류자를 5년간 올해(41만명)의 절반(20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 범죄는 이런 대대적인 단속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내쫓아 낸다면 그 일자리에는 한국사람이 가서 일을 하는 것일까? 그 일자리는 본래부터 한국사람이 기피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비어있는 그 일자리는 누구로 대체할 것인가. 일할 사람은 내쫓고,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공장과 농장들은 누구의 일손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어떤 대안을 갖고 국가가 발벗고 나서 반인권적인 행태들을 앞장서서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이주활동가들의 존재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표현을 빌려보자면 '봄날의 햇살' 같다.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며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그들이 겪었던 온도는 차가웠지만, 함께 모이니 따스해졌다.

앞으로 이 땅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궤적과는 다른, 좀 더 인간다운 삶의 궤적을 가질 수 있도록 곁을 기꺼이 내어주는 이주활동가들. 그대들의 용기와 발걸음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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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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