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예술과 함께 했던 제인 버킨이 세상을 떠났다
버킨백의 기원이 된 모델, 데뷔 이래 56년 동안 은막을 수놓은 영화배우, 세계를 사로잡은 뮤지션,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에 힘 썼던 사회활동가. 제인 버킨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영국 런던 태생이지만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살짝 벌어진 앞니를 드러낸 환한 미소와 소매를 무심히 걷어 올린 셔츠를 흉내냈습니다.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은 16일(현지시각) 제인 버킨이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팔순을 목전에 두고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그는 6월22일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지만, 건강 문제로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심장이 좋지 않았던 제인 버킨은 2021년 뇌졸중을 앓은 이후 건강을 회복했지만,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4년 연극 〈Carving a Statue〉를 통해 아티스트이자 엔터테이너로서의 첫발을 내딛은 제인 버킨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세 번의 결혼으로 얻은 세 명의 딸은 각각 사진가, 배우, 모델이 됐죠. 그 중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샬롯 갱스부르가 가장 유명합니다. 어머니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딸입니다. 고인의 마지막 영화는 딸 샬롯 갱스부르가 감독을 맡은 〈샬롯에 의한 제인(JANE BY CHARLOTTE)〉이었는데요. 샬롯 갱스부르가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제인 버킨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됐어요.
샬롯 갱스부르의 아버지이자 제인 버킨과 13년 동안 사실혼 관계였던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음악적 교감은 수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69년 영화 〈슬로건〉이었는데요. 영화에 함께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주제가 〈La Chanson de Slogan〉을 함께 불렀죠. 세르주 갱스부르가 작사, 작곡을 맡고 제인 버킨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부른 〈Yesterday Yes a Day〉는 두 사람의 대표곡입니다. 고인은 세 번의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연기에 열중했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자크 리베트, 장 뤽 고다르 등 누벨바그 거장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호평받았습니다. 2012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특별출연했는데요. 극 중 해원(정은채)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배우 제인 버킨, 즉 본인으로 등장했습니다. 제인 버킨은 서울에 오기 전 매니저를 통해 홍상수 감독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고, 이 만남이 특별출연까지 이어졌습니다. 같은 해에는 이효리와 만나 자선바자회에 에르메스 시계, 이자벨 마랑 니트, 에이글의 러버 부츠 등을 기부했고요.
제인 버킨이 60년 가까이 머물렀던 프랑스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우호에 기여한 공을 인정 받아 대영제국훈장과 프랑스 국가 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는데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의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로 노래한 버킨은 프랑스의 아이콘이었다"라는 추모의 글을 적었습니다. 메나 롤링스 주프랑스 영국 대사는 "가장 프랑스적인 영국 예술가"라는 말로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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