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美中 갈등·고금리 ‘첩첩산중’…높은 해외 의존 ‘지경학적 분절’ 역풍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진욱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economy03@mk.co.kr) 2023. 7.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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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둘러싼 퍼머크라이시스 양상은

‘첩첩산중(疊疊山中)’.

여러 산이 겹치고 겹친 산속이라는 뜻이다. 정갑영 연세대 명예교수(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3년 세계 정세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제시한 ‘퍼머크라이시스’를 이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정 교수 말처럼 2023년 한국 경제는 분위기가 험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공급망 붕괴, 미·중 패권 경쟁, 인플레이션에 이은 경기 침체, 기후변화 등으로 한국 경제의 예측 불가능성은 ‘뉴노멀’이 됐다. 이에 더해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핵 도발과 같은 또 다른 위험 요소도 떠안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과는 내부적 요인보다 ‘외생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한국을 둘러싼 퍼머크라이시스 양상을 위기 요인별로 분석해본다.

지난 1월 7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미하일 수도원 앞에서 한 시민이 파괴된 러시아 탱크 위에 올라가 있다. (연합뉴스)
요인(1) 지정학 위기

에너지·식량·무역에 충격

지정학적 위기는 한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4일 기획재정부는 ‘2023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내놓으며,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1.4%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 1.6%보다 0.2%포인트 낮아졌다.

기획재정부는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을 근거로 삼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가 물가 상방 압력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러시아는 주요 에너지·식량 수출국이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직후 국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푸틴의 ‘자원 무기화’ 정책과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수출 규제 여파가 주요 원인이다. 한국도 이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되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LNG 평균 가격은 MMBtu(열량 단위)당 34.24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04달러) 대비 128% 증가했다.

전쟁에 의한 국제 곡물 가격 인상은 세계 식량 가격을 크게 올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가격 100을 기준)를 보면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170.1로 급등해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2년 1~10월 평균치는 145.8에 달했다. 지속되는 곡물 가격 인상 여파로 한국 식품업계는 지난해 제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고, 국내 소비자 고통은 배가 됐다. 지정학적 위기가 에너지·식량 충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정학적 위기는 우리나라 경제에 비용 증가라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현재 이 위기가 지속되는 만큼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도 ‘상수’로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기다. 두 나라는 하루건너 하루꼴로 사실상의 경제 제재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정학적 위기는 한국 무역 적자로 이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액 급증이 한국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한 가지다.

한국은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연구원은 ‘2023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에서 올해 하반기에도 수출 감소가 지속되고, 연간 무역 적자는 35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며 ‘지정학적 위기’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한국의 국가별 수출 비중에서 각각 (2023년 1~5월) 17.8%, 19.6%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분쟁도 한국 무역에는 큰 부담이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무역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라”라며 “이제부터라도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와 중국, 미국 이외 다른 좋은 판매처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속 국내 반도체업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한국과 북한 문제라는 또 다른 지정학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갈등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 북한 비핵화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진정한 퍼머크라이시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중앙은행 콘퍼런스를 마친 뒤 제롬 파월 연준 의장(가운데)과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오른쪽)이 사회자인 트레버 리브 연준 통화정책국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AP)
요인(2) 경제 위기

美 금리 ‘예의 주시’·고용이 ‘변수’

경제적 위기는 한국의 또 다른 퍼머크라이시스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적 위기를 촉발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한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그 해결 방안으로 등장한 미국의 강력한 긴축 통화 정책이 한국 경제를 흔들었다. 미국은 2022년 3월을 시작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가 미국을 좇아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 역시 2022년 4월을 기점으로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우선 한국 GDP의 5배가 넘는 부동산 시장이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폭탄을 맞았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다음 달인 2022년 5월부터 실거래가격지수는 급락해 2023년 4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5.39% 하락한 119.9를 기록했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주택담보대출 상환 능력 감소 ▲부동산 PF 부실 우려 ▲전세사기 등으로 이어졌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75%가 주택담보대출로 이뤄졌는데, 이는 전 국민이 부동산에 인질이 잡힌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금리 인상은 언제든지 부동산 시장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금리 지속은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폭발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34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2.2%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조사 대상 가운데 한국은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GDP를 넘어섰다.

고금리가 이어질수록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한국은행의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다중채무자 수는 총 447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6000명 늘었다.

국내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상반기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금융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1년 전(0.56%)보다 높아졌다. 대출 규모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1033조7000억원이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말 1.49%(은행 0.35%·비은행 금융기관 3.63%)로 6개월 전(0.95%)보다 상승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연내 금리 인상을 여기서 멈출 것인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과열된 고용 시장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일자리는 올해 들어 160만개 증가해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두 배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인다. 고용 시장이 과열되면 임금이 오른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노동 과열을 식히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랜디 크로즈너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도 “연준이 고용 시장이 완화될 때까지 긴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금리를 좇아갈 힘마저 잃어버렸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한미 금리차인 1.75%포인트도 이미 심각한 수준인데, 미국이 부채 한도 협상에 성공하면서 금리를 연내 어디까지 올릴지 가늠이 힘들다”며 “한국은 부동산, 연체율 등의 복합적인 실물 경제의 문제로 인해 금리를 인상할 수도, 인하할 수도 없는 이도 저도 아닌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요인(3) 기후 위기

돌이킬 수 없는 재앙…韓 준비 태부족

기후변화는 지정학적인 위기나 경제적 위기 못지않은 퍼머크라이시스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위기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다. 국제 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을 체결하고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측정한 지난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역대 최고치인 평균 417.06ppm을 기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7년까지 최소 1년 동안 지구 연평균 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66%에 달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전체 에너지원별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6.7%(4만6412GWh, 전체 57만6809GWh)에 불과했다. 2021년 기준 EU 재생에너지 비중(22%)과 비교하면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는 해외 사업장에서는 RE100 조건을 모두 달성했으나 국내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7~8%에 불과하다”며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최근 승인된 EU의 ‘배터리법’을 비롯해 탄소중립 산업법, 공급망 실사법 등 제품에 대한 환경보호 관련 인증 제도가 강화되는 것 역시 한국의 대·중소기업에는 부담이다. 결국 국내 기업이 기후 위기에 맞춰 공정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순진 교수는 “한국은 부품을 제조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글로벌 기업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제조업같이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군의 경우 공정의 혁신을 통해 탄소 배출을 꾸준히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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