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넘버 90%]④평균나이 45.6세…덴마크의 '젊은 정치'
의회 절반이 45세 이하 젊은 정치인
청년 정치참여 원동력은 민주주의 교육
20대女 정치인 "여성 할당제 반대"
덴마크는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이들 청년 정치인은 덴마크 의회에 진출해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며 젊은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 정부도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와 청년 정치인 양성을 위한 지원에 적극적이다. 정치 선진국 덴마크가 90%에 육박한 꿈의 투표율을 기록한 비결로 꼽힌다.
16일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덴마크의 40대 이하 정치인 비율은 34.64%를 기록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도 45.65세로, 한국보다 10살 가까이 젊다. 여성 의원 비율은 43.6%에 달한다. 지방의회도 비례대표로 선출되는데, 수도 코펜하겐 시의원 55명 중 올해 30세가 된 3명을 제외하면 30대 미만 시의원은 12명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의회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21대 국회 현재 1992년생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30세가 되면서 20대 이하 국회의원은 전무하다. 40대 이하 의원 비율도 3.7%에 그친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1%다. 특정 성별과 연령층이 과대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덴마크 의회 평균 연령 45.6세…한국은 54.9세
양국 간 차이는 정치 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박혜민 뉴웨이브 대표는 "국내 정당에서는 꾸준하게 훈련을 받기 어렵고, 정당 특유의 조직 문화인 이른바 '나이주의' 때문에 그 안에서 청년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면서 "공천 같은 기회 자체도 기성 정치인들한테 유리한 선거 제도와 조직 문화로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청년들의 정치 진출이 어렵다"고 했다.
실제 덴마크의 청년 정치인들은 각 당의 공천을 통해 발탁되는 사례가 드물다. 덴마크는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활동이나 사회·시민단체 등을 통해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고, 이는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정치학으로 이어진다. 현역 국회의원 대부분이 청소년 때부터 정치 활동을 했으며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도 마찬가지다. 역대 최연소 총리를 지낸 그는 두 번째 여성 총리인데, 15세에 사회민주당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다 24세 때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청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는 덴마크청소년위원회(DUF) 역할이 컸다. DUF는 1940년대 나치즘과 비민주적 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청년들의 민주주의 교육과 참정권 훈련 등을 맡고 있다. 현재 80개 청소년·청년 단체, 약 6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뒀다. 덴마크 청소년들은 연령 제한 없이 정당이나 단체 등에 가입해 정치·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DUF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치 활동 참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덴마크 문화부로부터 지원도 받는다.
DUF, 총선 모의투표로 청년정치 참여율 높여
특히 DUF는 덴마크 의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총선 전 직접 다음 총리를 뽑는 '학교 선거(8~9학년 대상)'라는 모의 선거를 치르는데, 이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평가다. 학교 선거를 치렀던 연령대의 실제 투표율이 높아진다는 결과도 있다. DUF가 매년 조사한 '민주주의 분석'에 따르면 덴마크 청소년·청년(16~25세) 82%가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정치적 토론이 48%로 가장 높았고, 선거 참여(47%)가 뒤를 이었다. 서명 운동(39%)과 구매 혹은 보이콧 운동(23%) 등의 순이었다.
크리스티네 라운 룬드(Christine Ravn Lund·28) DUF 의장은 "민주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가치를 갖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상대적인 권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젊은층을 위한 지원 활동이 많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룬드 의장은 "민주주의 역사나 형식적인 제도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정치 참여를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국회의원, 휴직 허용…세비는 없어
크리스티나 사데 올루메코(Christina Sade Olumeko·26) 대안당 의원은 덴마크 의회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이다. 국회의원 당선 전 코펜하겐 시의원을 지냈다. 당시 그는 코펜하겐을 순환 경제 도시로 만들기 위한 '도넛 경제' 관련 조례를 통과시킨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의정활동으로 꼽았다. 도넛 경제학은 인간과 환경을 함께 지켜내기 위해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고안한 경제 모델이다. 현재는 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학원 졸업을 위해 최근 임기 중 두 달간 휴직했다. 덴마크는 모든 정치인이 자신의 휴직에 대비해 '대리인 명단'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권에서 휴직이 흔하다. 장관직을 수행하던 남성이 육아휴직을 쓴 사례도 있다. 올루메코 의원은 "정치인의 휴식을 공식화한 규칙이 있어 언제든 휴직할 수 있다"면서 아플 때는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저처럼 학교를 마치기 위한 휴직은 월급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실망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아무도 실망하지 않았다"면서 "'네가 학교를 마쳐서 다행'이라는 좋은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또 "정치인은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며 "덴마크의 문화는 정치인 이전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올루메코 의원은 '소수자 대변인'이란 당내 직함을 만들었다. 그는 "저처럼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은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행한 문제가 있다"면서 "덴마크에서는 소수자와 그들의 권리와 복지를 종종 잊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올루메코 의원이 속한 대안당은 진보계열으로, 보편적 기본소득과 주4일 근무제 도입 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추진 중이다. 지난 선거에서 올루메코 의원은 '여성 임원 비율 30% 의무화' 관련 법안에 대해 당론과 달리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첫 번째 이유로는 여성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며 "두 번째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선 안 되기 때문인데,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나쁘다고 해서 남성에게도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13세 청소년 정당 가입…23세 첫 코펜하겐 시의원 당선
로라 로젠빈(Laura Rosenvinge·29) 사회민주당 코펜하겐 시의원은 '준비된 정치인'이다. 13세에 청소년 정당에 가입했고, 21세에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2017년 23세에 당선된 로젠빈 시의원은 첫 선거에서 1600여표를 받았다. 다음 지방선거(2021년)에서 사민당의 득표율은 직전 선거 대비 10%포인트가량 떨어졌지만, 로젠빈 시의원은 오히려 약 1000표 더 득표해 당선됐다.
올해 29살인 로젠빈 시의원은 코펜하겐 시의회에서 최고령 중 한명이다. 코펜하겐 시의원 평균 연령은 33세다. 그는 "청소년 정당에 있던 좋은 친구들이 자원해서 선거 운동을 도와줬다"면서 "정치인들에 대해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존중하는 청소년들이 더 많다"고 전했다.
덴마크에서도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세대 격차, 성차별은 있다. 로젠빈 시의원도 정치활동 초반 20대 여성 정치인에 대한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는 "(시의원) 출마를 고려하기도 전 한 노인이 저를 '민주주의에 나쁜 사람'이라며 저에게 '직장을 구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얻으라고'고 조언한 적이 있다"면서 "그에게 나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에 살고 있고 모든 사람이 대표 돼야 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에 정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덴마크 최대 정치 행사인 폴케뫼데에서 만나 논쟁을 이어갔지만, 페이스북에 게재할 사진을 함께 찍으며 화해했다.
로젠빈 시의원은 지난해 시의회 임기 당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시의원 활동을 겸직했다. 아동 및 청소년 위원회 소속인 그는 주택과 도시 개발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장애인과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역할도 적극 수행하고 있다. 그는 "최종 목표는 항상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청년과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펜하겐=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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