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네덜란드 기업에 구애…반도체는 국가대항전 [기자수첩-산업IT]

조인영 2023. 7.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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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경쟁력 좌우할 반도체 잡기 위해 미·유럽·일본 등 '국가 세일즈' 치열
尹 대통령도 ASML 韓 투자 요청…민·관 '용인 클러스터' 구축에 합심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 한 식당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오찬회담에서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반도체 경쟁이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되고 있다.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첨단전략물자로 반도체가 대두되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국은 제조 설비 투자·공급망 확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인프라 지원, 보조금 등 각종 선물 보따리까지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는 모습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미국이다. 지난해 8월 반도체법을 통과시키며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해 약 69조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고 있다.

연방정부가 '반도체지원법'으로 주요 제조사들의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면, 각 주정부들은 파격적인 세제혜택으로 자기 지역 '기업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오하이오주는 인텔의 반도체 투자에 많게는 2조원 규모의 세제혜택을 줬고, 대만 파운드리업체인 TSMC는 애리조나주로부터 약 2600억원을 지원받는다.

유럽 공세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정부가 반도체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글로벌파운드리스가 프랑스에 설립하는 공장에 4조원을 지원한다. 독일 정부의 인텔 보조금은 기존 10조원에서 14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30년까지 약 60조원을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일본은 어떤가. 마이크론의 4조6000억원 투자 발표에 일본 정부는 절반 수준인 2조원의 보조금을 약속했다. 이 뿐 아니라 인도, 이스라엘 등도 반도체 대전에 속속 참전하며 세액공제, 인력, 인프라 등 여러 당근책을 앞다퉈 제시하고 있다.

일단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제조시설 및 기술 투자 등을 끌어내기만 하면 공급망 확충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기술 제휴 등 각종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 대항전은 세계 무역질서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업간 자유로운 교역을 우선하며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했던 자유무역이 이제는 정부 주도의 보호무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반도체 투자'를 낙찰 받기 위해 각국 정부·지자체가 보조금 규모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모습은 마치 글로벌 경매장을 연상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경쟁국들의 부상을 견제하고 초격차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면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 메모리에서는 선두 주자이나 파운드리·팹리스에서는 다소 밀리고 있는 국내 반도체는 역량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

다행히도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 클러스터에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미국에는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고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도 공급망 확충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담에서 노광장비 제조업체인 ASML의 한국 투자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ASML의 투자가 현실화되면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안정적인 반도체 장비 조달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반도체 '세일즈 외교'에 앞장서는 것처럼, 민·관도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인프라 지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한편 이를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줄이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해외만 보더라도 사례가 다양하다. 대만 TSMC는 애리조나주로부터 인도 구축, 수자원 인프라 시설, 폐수 처리 시스템을 지원받는다. 삼성 역시 테일러시의 도움으로 일찌감치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도 기업이 요청하면 그제야 관련부처가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전기, 용수 등 인프라 측면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사안 등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12일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민관이 ‘원팀’이 되는 게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고 언급했다. 기업만 잘 해서는 반도체 대전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 과감하고도 기민하게 움직여야만 반도체 국가대항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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