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체포, 안 가면 '겁쟁이'…남아공 초대 받은 푸틴 딜레마
다음 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가 '푸틴 체포'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남아공은 ICC 회원국이어서, 푸틴 대통령이 영토 안에 들어갈 경우 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
로이터 통신은 1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전날 남아공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참석 여부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며 "러시아와 남아공 모두에 외교적 딜레마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ICC가 지목한 혐의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어린이들을 러시아 연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부모를 잃은 아이 등을 인도적 이유로 자국에 데려간 것이라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발했지만, 우크라이나와 ICC는 전쟁 이후 1만 6000여 명의 아이가 불법 납치됐다고 보고 있다. ICC가 현직 국가 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건 '피의 숙청'을 했던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과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브릭스 회의에 초청을 받고도 가지 않을 경우, 체포될까 두려워서 불참했다는 '겁쟁이 푸틴'이라는 조롱을 들을 수 있다.
참석하자니 남아공 정부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남아공 정부는 친러 성향이지만, ICC 회원국인 만큼 영장 집행에 협조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푸틴 체포 영장이 발부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4월, 시릴 라마포사(71) 남아공 대통령은 ICC 탈퇴를 공표했지만 만 하루가 안 돼 이를 번복했다. 푸틴 체포에 반발해 ICC를 탈퇴하는 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으니 오락가락했다. 폴 마샤틸레 남아공 부통령은 14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가 체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푸틴을) 체포할 수 없다"며 "그냥 푸틴이 오지 않는 게 우리로선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토로했다.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옛 소련 시절부터 지원을 받으며 러시아와 공고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유엔(UN)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총회 결의안을 낼 때도 남아공은 기권했다.
남아공 관료들은 대안을 짜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남아공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국제법상 의무를 검토하기 위해 법적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남아공은 온라인 정상회담을 개최하거나, 중국 등 제3국으로 개최지를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다른 브릭스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외신들은 이달 27~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러시아·아프리카 2차 정상회담 및 경제포럼에서 러시아와 남아공 측이 묘안을 찾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선 러시아 외무장관이 대신 참석하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마샤틸레 남아공 부통령은 "양국 정상이 대화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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