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작년 초등생 11명 극단선택…5년전보다 266% 늘었다
매년 7명 이상의 초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5년(2018~2022년)간 교육부에 보고된 초등학생 자살 통계다. 지난해엔 11명, 5년 누적으로는 37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자살한 초·중·고교생은 822명, 연 평균 164.4명에 이른다. 고교생이 505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은 280명이었다.
청소년 자살 문제의 심각성은 지난 4월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닷새 만에 3명의 중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교육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건물에서 한 여고생이 실시간 방송을 켜놓은 채 숨졌고, 다음날엔 중3 남학생이 동급생을 흉기로 찌른 후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21일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14세 중학생이 떨어져 숨졌다.
5년 간 822명 죽었다…초등생도 37명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생은 193명으로 5년 전(2018년·144명)보다 34.0% 늘었다. 고등학생은 32.6%(89→118명), 중학생은 23.1%(52→64명) 증가했고 초등학생은 266.7%(3명에서 11명) 늘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등학생 자살은 굉장히 예외적인 일로 통계에서도 ‘0’에 가까운 숫자였는데, 최근 급격히 늘었다”며 자살의 저연령화 현상을 지적했다.
사망 원인은 가정문제(248건·이하 중복 포함), 학업 진로 문제(167건), 정신과적 문제(161건), 대인관계 문제(115건) 등의 순이었다. 서고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 자살은 개인, 부모, 가족, 친구, 학교 관련 변인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며 충동성, 잦은 자해, 모방 등의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우울증 환자 급증도 원인
정신과적 문제로 인한 자살도 2018년 16명에서 2022년엔 67명으로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조사한 2021년 10대 청소년 우울증 진료환자는 5만7587명으로 2017년(3만273명)보다 90.2%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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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대인 관계 악화, 자살 부추기는 SNS…
학교폭력이나 코로나19가 학생들의 대인 관계 악화에 악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신건강 전문가들로부터 학교가 비대면으로 전환됐던 기간 내재했던 스트레스들이 쌓여 학생들의 심적 부담이 가중됐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최근에는 부모와의 갈등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고운 연구위원은 “자살·자해 위험군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 부모의 동의가 없어 적절한 상담 혹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자살 증가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단정할 순 없지만, SNS 등의 환경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는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 자살동반자 모집, 구체적인 자살 방법 제시, 자살 유도, 자살 도구 판매 등 자살유발정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은 아이들 상처도 안고 가야”
이재영 서울 중동고 보건교사는 “학생의 극단 선택이 발생하면 학교는 남은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안고 가야 한다”며 “학교 전체가 위기 상황에 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학교를 방문해 정서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진단을 내려주는 등의 도움을 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고운 연구위원은 “학생 개인의 자살, 자해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호자, 주변 친구들, 현장종사자, 일반 청소년 및 교직원 등 지역사회 전반으로 정책의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청소년 우울증 유병률이 증가한 경험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청소년들이 부모 동의 없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며 “진료 가능한 연령을 낮추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민지·장윤서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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