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찾아온 尹에 요청했다..."韓, 2000조 우크라 재건 참여"
윤석열 대통령의 1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가치연대의 강화 요구에 대한 확실한 호응인 동시에 전쟁 이후 본격화될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G7·나토 연계…"韓역할에 호응"
이번 방문은 우크라이나의 초청에 따라 이뤄졌다. 지난 5월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의 방한 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됐고, 같은달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재차 초청 의사를 밝혔다. 이번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 참석 직전에도 외교 채널을 통해 재차 초청 의사가 전달됐다.
대통령실은 고위관계자는 16일(현지 시간) 기자들과 만나 “출국 전까지 (우크라이나 방문)결정을 못한 채 출국했다”며 “(방문 결정은)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와 책임 외교의 실천 기조가 아시아 넘어 유럽으로 향하고, 글로벌 현안에 대해 입체적으고 긴밀하게 연대한다는 명분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방문이 G7 국가에 버금가는 역할을 공식 요청한 우크라이나의 초청에 따라 G7ㆍ나토 정상회의 일정과 연계돼 추진됐다는 의미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미국은 그간 한국이 전쟁 지원에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중ㆍ러를 외면하기 어려운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 표현을 자제해왔다”며 “윤 대통령이 G7, 나토 직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사실상 대외적으로 G8 국가로서 책임과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G7 모두 방문…'G8 보폭' 도약
실제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언론발표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공식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한국은 주요 개도국들이 평화공식 정상회의에 보다 많이 참여하고, 자유 연대에 동참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빈국과 개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이 G7 선진국들을 대신해 사실상의 G8 국가의 자격으로 개도국들의 동참을 이끌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해 “미국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지난 3월 21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끝으로 모든 G7 국가의 정상들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로이터통신은 윤 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전하며 “다른 아시아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방문은 중요하다”며 이번 방문이 사실상 앞선 G7 정상들의 우크라이나 연쇄 방문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2000조원 재건 사업 명분"
윤 대통령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에는 전후 복구 사업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도 내포돼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오랜 전쟁으로 황폐화 된 우크라이나를 재건하는 사업은 2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와 폴란드 순방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도 한국이 재건 사업에 적극적 역할을 할 뜻을 밝혔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과거 6ㆍ25전쟁 이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거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경험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상황은 70여 년 전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며 “‘드니프로강의 기적’도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전후 회복과 번영의 역사가 그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가꾸는 동반자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군수 지원에 대해서도 “지난해 방탄복, 헬멧과 같은 군수물자를 지원한 데 이어 올해도 더 큰 규모로 군수물자를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살상무기 지원 계획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지뢰 탐지 장비 등 인도적 지원 품목을 신속히 전달했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켰다. 그리고 양 정상은 회담을 마친 뒤 지뢰 탐지기, 지뢰 제거기 등에 대한 협력을 확대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측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전후 재건 복구 및 자국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현지생산 등 양국 간 방위사업 협력을 희망했다고 한다.
"리빌딩 넘는 뉴빌딩"…국익·실리 외교
윤 대통령의 재건 사업을 강조한 배경과 관련 대통령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14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는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리빌딩’을 넘어, 국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뉴빌딩’을 추진 중”이라며 향후 재건 사업이 단순한 재건과 복구 수준을 넘어선 규모가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선진국들 역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16개국을 지원했던 ‘제2의 마셜플랜’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윤 대통령에게 단순한 피해 복구 차원을 넘어 사회적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공급망, 방위산업, 2차 전지와 전기자동차 생산, 금속 제련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해선 한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내년 주요국의 선거 일정과 글로벌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조만간 전쟁의 종료나 휴전에 대한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우크라이나 상황은 한국의 휴전 모델과 유사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가치연대 강화라는 정치적 명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보다 상대적으로 전쟁 지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 전후 사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익과 실리 차원의 외교로 해석할 여지가 오히려 더 크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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