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강한 군대와 에어컨
'장병=소모품'이란 인식 탓
군 당국 사고방식 전환 필요
최근 영상팀에서 제작한 콘텐츠 중 하나가 ‘왜 군용차엔 에어컨이 없을까?’다. 사무실에 잠깐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정신력이 강조되는 군대라지만 에어컨 없는 ‘찜통운전’이라니. 사실 단순한 궁금증이었는데 취재하다 보니 군용차 에어컨 하나만으로도 군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군에서 운용 중인 군 전용 표준차량 대부분은 에어컨이 없고, 수명을 훨씬 넘긴 차들이 많다. 물론 민간에서 제작한 차량을 개조한 경우나 지휘 차량, 신형 전차 등에 에어컨이 있지만 양적인 면에서 비할 바가 못 된다. 운전병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에어컨 없이 무더운 여름을 보냈거나, 에어컨이 있어도 사용을 못 한 채 군용차량을 몰았다.
군사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공통적으로 지적한 건 군에서 사람을 대하는 인식이었다. 장병들을 소모품으로 보고 ‘군인이 무슨 에어컨? 더워도 참아야지’ 그런 생각이 뿌리깊다는 뜻이다. 예산 문제가 아닐까 싶어 물어본 건데 예산 부족도 결국 군용차 운용에 에어컨은 필요없다는 군 당국과 일선 간부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예산을 확보할 때도 장병들의 군생활 환경보다는 장비 확보에 우선순위가 있고, 장병들을 여전히 전투원이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다수라는 분석은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 방산 수출의 자랑, K9 자주포를 만드는 업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내수용엔 없고, 수출용에만 에어컨이 있는 건 우리 군 당국이 스펙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고, 노르웨이나 폴란드 등에 수출하는 자주포에는 해당국의 주문대로 에어컨이 포함된다는 거였다. 국내 자주포 안의 운용병들은 올여름에도 내부 온도가 40~50도를 넘나드는 사우나를 또다시 경험할 것이다. 화려한 K방산의 빛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군의 현실이다.
우리 군은 유독 개인장구 개선에 인색한 편이다. ‘노르망디 물맛’이라고 표현될 만큼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수통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군에서 2026년까지 수통을 신형으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긴 했는데 일선 부대까지 정말 교체가 되는지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가 군 훈련소에서 쓰는 낡은 수통을 개선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미 합동훈련을 할 때면 개인방탄장비나 야간투시경이 미군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런 사례들은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보다 몸집 불리기를 우선해왔던 사고방식이 큰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군 내부에서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군용차 에어컨만 해도 내년 배치를 목표로 개발 중인 신형 중형트럭들은 냉난방이 모두 가능한 장비가 탑재돼 있다고 한다. 이미 신형 지휘 차량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 혜택을 본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소수라는 것, 특히 간부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장병들의 불신이 크다는 데 있다. 신형 장비가 있긴 한데 너무 귀하신 몸이어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닐까.
군에서 장병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군용차 에어컨에 그치지 않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군으로 유입되는 병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국과 대치 중인 대만이 지난 5월 남성 지원병의 신장 기준 하한선을 낮추고, 의무 복무병 면제 기준을 강화했다는 뉴스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구절벽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병력 운용에 대한 사고방식 전환과 함께 일선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단기적인 액션 플랜이 필요해 보인다.
첨단 장비만으로 강군이 될 수는 없다. 한여름 땡볕 군용차에서 얼음물과 여름용 방석으로 더위를 이겨내고, 운전병을 옆에서 부채질해주는 간부의 모습이 더 이상 미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날씨 변화가 심한 올해, 무더위를 극복하는 수단이 군인정신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백상진 뉴미디어팀장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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