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알카라스 시대 열렸다…조코비치 꺾고 윔블던 우승

피주영 2023. 7. 1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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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우승 트로피를 든 남자 테니스 '차세대 황제' 스무살 알카라스. AP=연합뉴스

스무살의 카를로스 알카라스(세계랭킹 1위·스페인)가 '살아있는 전설' 노박 조코비치(36·세계 2위·세르비아)를 무너뜨리고 윔블던 테니스 대회 왕좌에 올랐다.

알카라스는 1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2023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4시간 42분간의 대혈투 끝에 조코비치에 3-2(1-6 7-6〈8-6〉 6-1 3-6 6-4) 역전승을 거뒀다. 조코비치는 메이저 대회 통산 최다인 23회 우승 기록 보유한 최강자다.

지난해 US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든 알카라스는 통산 메이저 우승 횟수를 2회로 늘렸다. 우승 상금은 235만 파운드(약 39억원). 알카라스는 조코비치와 상대 전적에서 2승 1패로 앞서나갔다. 지난달 프랑스오픈 준결승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했다. 조코비치는 윔블던 5연패와 통산 8번째 우승이 좌절됐다.

우승이 확정되자 코트에 드러누워 감격하는 알카라스. AP=연합뉴스

알카라스의 우승은 조코비치, '흙신' 라파엘 나달(37·스페인), '황제' 로저 페더러(42·스위스·은퇴)가 20년간 지켜온 '빅3 시대'를 끝낸 상징적 사건이다. 메이저 20승의 페더러는 지난해 은퇴했고, 22승의 나달도 내년 은퇴를 예고하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고관절 부상을 딛고 뛰는 앤디 머리(36·영국·윔블던 2승) 역시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 넷 중 유일하게 조코비치가 전성기를 유지했다. 그런데 올해 알카라스가 조코비치의 안방과 같은 윔블던 무대에서 우승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젖혔다는 평가다. 윔블던에서 빅3나 머리가 아닌 선수가 우승한 것은 2002년 레이턴 휴잇(은퇴·호주) 이후 무려 21년 만의 일이다.

알카라스는 하드 코트, 클레이 코트보다 잔디 코트에 유독 약했다. 경험 부족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달 열린 더 퀸스 클럽 신치 챔피언십에서 잔디코트 첫 우승을 이루더니 윔블던에서도 정상에 서며 어린 나이에 모든 코트 표면에 능한 선수로 업그레이드됐다.

경기 초반만 해도 알카라스가 완패할 것처럼 보였다. 그는 조코비치를 상대로 고전하며 1세트를 허무하게 내줬다. 2세트부터 반격에 나섰다. 알카라스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승부를 1-1 원점으로 돌렸다. 이번 대회 타이브레이크 6전 전승 중이던 조코비치는 경기가 풀리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3세트 알카라스가 게임 스코어 3-1로 앞선 상황에서는 13차례나 듀스를 기록하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25분이 넘는 승부 끝에 브레이크 포인트를 따내고 포효한 알카라스는 결국 3세트를 가져가며 세트 스코어 2-1로 승부를 뒤집었다.

경기 흐름을 되찾고 포효하는 알카라스. AFP=연합뉴스

조코비치도 그대로 물러나진 않았다. 왼쪽 허벅지에 테이핑하고 경기에 나선 조코비치는 4세트 들어 해당 부위를 라켓으로 여러 번 내려치며 집중한 끝에 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5세트로 몰고 갔다. 알카라스는 조코비치의 3번째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해내며 승기를 잡았다. 조코비치는 라켓을 네트 기둥에 내리치며 분풀이했다.

쉴 새 없이 뛰는 20대 알카라스의 '뛰는 테니스'에 30대 중반의 조코비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조코비치는 이날 여러 번 코트에 나뒹굴었다. 조코비치의 마지막 샷이 네트를 넘지 못하며 우승을 확정한 알카라스는 코트에 드러누워 얼굴을 감싸 쥐고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감격했다.

경기 후 조코비치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인 알카라스는 우승자의 자격이 있다. 잔디코트 경험이 많지 않을 텐데 이렇게 빨리 적응해 대단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근소한 차이로 패해서 쓰라리다. 내가 더 강해져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에게 감사를 전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알카라스는 "꿈이 현실이 됐다. 조코비치를 상대로 결승에서 이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 "조코비치는 내게 영감을 주는 스타다. 결승 무대에서 그를 상대로 경기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기뻐했다.

알카라스의 '뛰는 테니스'에 고전한 조코비치. 여러 차례 코트에 나뒹굴었다. AFP=연합뉴스

2018년 프로로 데뷔한 알카라스는 2021년 18세의 나이에 크로아티아 우마그 대회에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마스터스 1000 대회인 마이애미오픈, 마드리드오픈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거푸 작성하고 US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최연소(19년 5개월)에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기록도 썼다.

부상으로 올해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에는 불참했던 알카라스는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는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게 1-3으로 완패했다. 알카라스는 3세트 초반부터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완패했다. 알카라스는 긴장 때문에 몸이 굳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2020년부터 함께해온 심리학자와 꾸준히 심리 치료를 받으며 멘털을 다잡았다. 결승전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상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라스는 8월 28일 개막하는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 US오픈에서 2연패에 도전한다. 조코비치는 자존심 회복에 도전한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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