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대통령의 말, 요령 있는 메시지

2023. 7. 1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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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전 국회의원

케네디의 ‘달 탐사’ 선언이 좋은 메시지의 표본인 이유는
정확한 진단과 비전 제시로 요령을 제대로 파악한 때문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양육 등 악순환의 굴레에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은 미래세대에겐 희망과 절망에 관한 문제

미래세대 위한 마지막 기회
적당히 요령 부리기엔 아까운 시간이 지나간다

“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습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취임 넉 달 뒤인 1961년 5월 ‘국가의 긴급과제에 대한 특별교서’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1957년 스푸트니크 로켓 발사로 미국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우주 경쟁, 핵무기 경쟁에서 소련이 앞선 것이다. 케네디의 달 탐사 선언으로 추격자 미국은 ‘왕복 우주비행’ 시대의 개척자라는 새로운 목표를 선점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69년 전 세계인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닐 암스트롱 선장의 첫걸음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케네디 선언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케네디의 선언은 좋은 메시지의 표본으로 일컬어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면서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나아가 추격자에서 개척자로 논점을 바꿈으로써 소련에 뒤처져 상처받은 미국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스토리까지 그 모든 요소를 하나의 문장에 담아냈다. 정치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실현하는 것을 소명으로 한다면 케네디 선언은 그 본래 목적에 잘 부합한다.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이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를 요령(要領)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케네디 선언은 요령을 잘 파악한 셈이고, 소련이 코끼리 뒷다리에 골몰했다면 그는 코끼리 전체로 시야를 돌린 것이다. 그처럼 지도자의 말에 실리는 힘은 정확한 현실 진단과 적절한 과제 제시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긴급과제는 무엇인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학 서열에 따라 최대 50%까지 임금 격차가 난다고 한다.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월 평균 52만4000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데, 대부분의 학부모는 그만큼만 들면 낫겠다고 한다. 실상은 훨씬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대입 수험생만이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아니 영어유치원 입학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과학고나 외고에 진학해야 더 좋은 대학, 로스쿨이나 의대 진학의 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소수와 다수의 탈락자를 양산하는 경쟁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수많은 아이에게 탈락자의 길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공존 내지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의사 변호사가 된다고 안전한 미래가 보장될까. 이런 의문들에 답하고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게 교육개혁의 숙제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출산율은 0.78명까지 떨어졌다. 25세에서 49세까지 남성의 절반은 미혼이다. 불안한 취업과 직업의 미래,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부담에 결혼도 출산도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20대의 60%가 자신들은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한 조사 결과도 불안한 연금재정 문제만이 아니라 언제까지 연금을 납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현실 때문이다. 노동과 교육, 연금은 청년 미래세대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그 문제들을 3대 개혁과제로 선정한 것은 핵심, 즉 요령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데 ‘킬러 문항’ ‘교육 카르텔’ ‘건폭’ ‘반국가세력’ 같은 대통령의 말이 툭툭 튀어나오고 정부는 그 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누군가는 그런 메시지들이 귀에 꽂히는 ‘킬러 메시지’라고 하지만,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교육개혁이 이뤄지진 않는다. 대학 진학이 평생을 좌우하고 그 외엔 길이 없다고 느끼는 한. 교육 기회와 임금 격차, 교육비와 저출산, 정규직과 비정규직,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 확대된 플랫폼의 지배력과 늘어나는 초단기노동자(gig worker)에 이르기까지 노동과 교육, 연금 문제는 하나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와 같다. 그건 미래세대의 희망과 절망에 관한 문제다. 그것이 핵심이다.

‘요령’의 사전적 의미 끄트머리에는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라는 설명도 있다. 꼭 필요한 골자라는 뜻과 잔꾀라는 상반된 뜻이 공존하는 묘한 단어가 요령이다. 본질을 제대로 붙드느냐, 아니면 잔꾀를 부리느냐에 따라 그 뜻은 완전히 다르게 쓰인다. 거대한 격변의 시대에 미래세대에게 좀 더 나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마지막 시간이 지금이다. 적당히 요령 부리기엔 아까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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